장닭도 때로는 추억이다 / 김종철
장닭이 수탉인지
수탉이 장닭인지 어린 나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어쨌든 놈들은 자주 암탉 등을 올라탔고
나를 쫓아다니며 연신 쪼아대었습니다
가족 중에서 가장 어린 나만 겁주고
횃대 위로 날아가 목청을 뽑았습니다
한밤중에도 길게 목청을 뽑다가
저놈 때문에 집구석 망친다고
아버지는 닭모가지를 비틀어 버렸습니다
밥상에 오른 닭을 모두 맛있게 먹었지만
나는 끝끝내 먹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 닭은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밤중 나도 잡아먹힐까 싶어
내 딴에는 뜬눈으로 지샜는데
붉은 닭벼슬 같은 아침이 오면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울고 보챌때마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불쌍해서 키운다고
온 가족이 깔깔깔 거린 날
내 머릿속에는 밤새 잘 발라먹은 닭뼈가
후두둑후두둑 소나기처럼 떨어졌습니다
<문학수첩> 2007년 봄호
<이 계절의 좋은 시>문광영시평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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