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지빠귀 / 송찬호
어디선가 그 오래된 나무에게
킬러를 보냈다 한다
한때 꽁지머리였던
숲 해설가였던
달의 비서이기도 했던
지금은 냉혹한 킬러로 변신한 그를
안에 아무도 없는지 그 나무 속에서
찌릿찌릿찌릿, 새소리같이
오랫동안 전화가 울린다
오후 다섯 시,
노을이 생기느라
하늘이 붉게 조금 찢어졌을 뿐인데
벌써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다만 조그만 쇠뭉치 같은 것이
나무에서 솟구쳐 올라
빠르게 내 옆을 지나가는 것을 언뜻 보았을 뿐이다
그때, 얼굴에 칼자국 흉터가 있는
작고 단단한 그것이
개똥지빠귀 뺨이었을까?
날이 빠르게 저물어간다
사건은 명료하다
누군가는 절명으로 산다는 것,
오래된 나무 같은 걸 쓰러뜨려
노래를 얻기도 한다는 것,
작고 단단한 그 무엇이
빠르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던 저녁 무렵.
『문학과사회』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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