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님/김지하

시인 최주식 2012. 9. 10. 22:07

 



가랑잎 한 잎
마루 끝에 굴러들어도
님 오신다 하소서

개미 한 마리
마루 밑에 기어와도
님 오신다 하소서

넓은 세상 드넓은 우주
사람 짐승 풀 벌레
흙 물 공기 바람 태양과 달과 별이
다 함께 지어놓은 밥

아침저녁
밥그릇 앞에
모든 님 내게 오신다 하소서

손님 오시거든
마루 끝에서 문간까지
마음에 능라 비단도
널찍이 펼치소서.

―김지하(1941~  )

시를 가르치다 보면(시를 가르치다니!) 시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 되묻는다. 너는 지금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이해가 가느냐고. 저 꽃밭에 핀 꽃들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하면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멀뚱멀뚱 쳐다본다.

이 여름의 뜨거움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염천 허공에 제 목청을 터져 뿌리고 있는 말매미들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마주할 뿐이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것들뿐.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이 된다는 관념 정도. 좀 큰 것은 이해의 대상을 넘어선다.

아침 밥상을 마주한다. 밥이 어디서 왔지? 고마운 농부의 손에서 왔다고 가르쳐서는 만의 하나만 가르친 것이다. 전 우주(全宇宙)의 화음으로 온 것이다. 다만 물음이 있을 뿐. 그 손님(물음)이 오시거든 기쁘게 기쁘게 '능라'를 펼쳐야 한다. 그게 곧 구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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