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와서 울었네/정은숙
지하 주차장, 신음 소리 들린다.
방음 장치가 완벽한 차창을 뚫고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울 수 있는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
그가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자신의 익숙한 자리를 버리고
그가 낮게 낮게 시간의 파도 속을 떠다닌다.
눈물이 거센 파도가 되고 멈춰 선 차들은
춤을 추네. 울음소리에 스며들어 점차
나는 없네.
이 차는 이제 옛날의 그 차가 아니라네.
이 차는 속으로 울어버린 것이라네.
나를 싣고서 떠나가 버렸다네.
―정은숙(1962~ )
누구도 오래 머물길 원치 않는 지하 주차장에서 차의 문을 잠그고 누군가 흐느낀다. 아무도 없으리니 통곡이 된다. 그 울음이 온 자리는 '자신의 익숙한 자리'이리라. 무엇을 원망하는 것도 아닌, 일상의 터널에 잠겨버린, 오직 스스로를 향한 설움의 만개(滿開)이다. 멀찍이에서 그 울음을 '발견'한 '나'도 그 울음의 이웃이다. 이게 뭐야. 인생이야? 이게 뭐야. 지독한 질문이 오고 모든 울음의 이웃들이 노래(구어체로의 전환을 보라!)를 이루어 일상을 떠나본다.
그 울음은 삶을 지탱시키는 거름인지 모르네. 그 울음터를 찾아 우리는 멀리 여행을 가는 건지 모르네. 오래 혼자 있고 싶은 건지 모르네. 입산(入山)하고 싶은 건지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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