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낭송 321

이야기 나누기/정유경

이야기 나누기 / 정유경 알지? 놀기는 더하기 숙제는 빼기 용돈은 곱하기 이야기는 나누기 이야기는 당연히 나누어야지 나누어지기 위해 태어난 이야기 두 눈을 반짝이게 하는 안약 같은 이야기, 가슴까지 화하게 하는 치약 같은 이야기, 스스로 스며들어 아픈 데를 풀어주는 물약 같은 이야기, 고약 같은 이야기... 들은 이야기, 겪은 이야기, 만든 이야기, 기쁜 이야기, 슬픈 이야기, 새 이야기, 네 가슴 내 가슴에 별처럼 떠서 반짝이는 이야기, 설레는 이야기... 맞지? 놀기는 더하기 숙제는 빼기 용돈은 곱하기 이야기는 나누기 이야기는 나누기 이야기는 나누기

공존의이유∙12 / 조병화

공존의이유∙12 / 조병화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기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찔레꽃/송찬호

찔레꽃/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 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 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 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 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

깨끗한 영혼/이성선

깨끗한 영혼/이성선 영혼이 깨끗한 사람은 눈동자가 따뜻하다. 늦은 별이 혼자 풀밭에 자듯 그의 발은 외롭지만 가슴은 보석으로 세상을 찬란히 껴안는다. 저녁엔 아득히 말씀에 젖고 새벽엔 동터오는 언덕에 다시 서성이는 나무. 때로 무너지는 허공 앞에서 번뇌는 절망보다 깊지만 목소리는 숲속에 천둥처럼 맑다. 찾으면 담 밑에 작은 꽃으로 곁에서 겸허하게 웃어 주는 눈동자가 따뜻한 사람은 가장 단순한 사랑으로 깨어 있다.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 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