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낭송 321

사람이니까 괜찮다/박노해

사람이니까 괜찮다/박노해 사람은 괜찮다 넘어지지 않고는 걸음마를 배울 수 없으니 사람은 괜찮다 잘못 걷지 않고는 나의 길을 찾을 수 없으니 사람은 괜찮다 잃어보지 않고는 귀한 줄을 알 수 없으니 상처받고 실패하고 잘못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그래도 너와 함께라서 좋았다 사람은 괜찮다 사랑은 괜찮다

산은 알고 있다/신석정

산은 알고 있다/신석정 산은 어찌보면 운무雲霧와 더불어 항상 저 아득한 하늘을 연모戀慕하는 것 같지만 오래 오래 겪어온 피 묻은 역사의 그 생생한 기억을 잘 알고 있다. 산은 알고 있다.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그 기나긴 세월에 묻어간 모든 서럽고 빛나는 이야기를 너그러운 가슴에서 철철이 피고 지는 꽃들의 가냘픈 이야기보다도 더 역력히 알고 있다. 산은 가슴 언저리에 그 어깨 언저리에 스며들던 더운 피와 그 피가 남기고 간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마련하는 역사와 그 역사가 이룩할 줄기찬 합창合唱소리도 알고 있다. 산은 역력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이슬 젖은 하얀 촉루髑髏가 딩구는 저 능선稜線과 골짜구니에는 그리도 숱한 풀과 나무와 산새와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그리고 그칠 줄 모르고 흘러가는 시냇물과 시냇물이..

개/유자효

개/유자효 의정부에서 열린 전국 시낭송 경연대회 경기도 예선 눈 먼 여인이 누런 개의 인도를 받으며 건물로 들어섰다 대회장의 밖에 개는 공손하게 앉았다 여인은 화장실로 가서 짊어지고 온 가방을 풀어 한복으로 갈아 입었다 여인의 차례는 마지막이었다 몇 번을 맨발로 연습한 대회장 바닥의 감각을 맨발로 확인하며 단상에 올랐다 아무도 그녀가 눈이 먼 줄 몰랐다 여인은 창과 함께 시를 낭송했다 낭송은 다소 서툴렀지만 절절한 한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여인의 차례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개는 눈을 끔벅이며 구석에 묵묵히 엎드려 있었다 누가 바라보면 개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진 눈 어진 눈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치 어느 착한 사람이 개의 형상을 하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