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니까 괜찮다/박노해 사람이니까 괜찮다/박노해 사람은 괜찮다 넘어지지 않고는 걸음마를 배울 수 없으니 사람은 괜찮다 잘못 걷지 않고는 나의 길을 찾을 수 없으니 사람은 괜찮다 잃어보지 않고는 귀한 줄을 알 수 없으니 상처받고 실패하고 잘못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그래도 너와 함께라서 좋았다 사람은 괜찮다 사랑은 괜찮다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20.07.20
산은 알고 있다/신석정 산은 알고 있다/신석정 산은 어찌보면 운무雲霧와 더불어 항상 저 아득한 하늘을 연모戀慕하는 것 같지만 오래 오래 겪어온 피 묻은 역사의 그 생생한 기억을 잘 알고 있다. 산은 알고 있다.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그 기나긴 세월에 묻어간 모든 서럽고 빛나는 이야기를 너그러운 가슴에서 철철이 피고 지는 꽃들의 가냘픈 이야기보다도 더 역력히 알고 있다. 산은 가슴 언저리에 그 어깨 언저리에 스며들던 더운 피와 그 피가 남기고 간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마련하는 역사와 그 역사가 이룩할 줄기찬 합창合唱소리도 알고 있다. 산은 역력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이슬 젖은 하얀 촉루髑髏가 딩구는 저 능선稜線과 골짜구니에는 그리도 숱한 풀과 나무와 산새와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그리고 그칠 줄 모르고 흘러가는 시냇물과 시냇물이..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20.07.19
개/유자효 개/유자효 의정부에서 열린 전국 시낭송 경연대회 경기도 예선 눈 먼 여인이 누런 개의 인도를 받으며 건물로 들어섰다 대회장의 밖에 개는 공손하게 앉았다 여인은 화장실로 가서 짊어지고 온 가방을 풀어 한복으로 갈아 입었다 여인의 차례는 마지막이었다 몇 번을 맨발로 연습한 대회장 바닥의 감각을 맨발로 확인하며 단상에 올랐다 아무도 그녀가 눈이 먼 줄 몰랐다 여인은 창과 함께 시를 낭송했다 낭송은 다소 서툴렀지만 절절한 한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여인의 차례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개는 눈을 끔벅이며 구석에 묵묵히 엎드려 있었다 누가 바라보면 개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진 눈 어진 눈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치 어느 착한 사람이 개의 형상을 하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여..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20.06.13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정호승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20.05.08
묵상/천양희 묵상/천양희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수없이 말하고, 가지말아야 할 곳 수없이 걸어가고, 버려서는 안될 것 수없이 버렸습니다 사랑 하나에도 목숨 걸지 못하고, 진실 하나에도 깃발 들지 못하고,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세상 원망했습니다. 혀끝으로 수없이 맹세하며 혀끝으로 수없이 배반..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20.05.08
아침/이해인 아침/이해인 사랑하는 친구에게 처음 받은 시집의 첫 장을 열듯 오늘도 아침을 엽니다. 나에겐 오늘이 새날이듯 당신도 언제나 새사람이고 당신을 느끼는 내 마음도 언제나 새마음입니다. 처음으로 당신을 만났던 날의 설레임으로 나의 하루는 눈을 뜨고 나는 당신을 향해 출렁이는 안타..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20.04.28
시간의 탑/유미희 시간의 탑/유미희 할머니, 세월이 흘러 어디로 훌쩍 가 버렸는지 모른다 하셨지요? 차곡차곡 쌓여서 이모도 되고 고모도 되고 작은엄마도 되고, 차곡차곡 쌓여서 엄마도 되고 며느리도 되고 외할머니도 되었잖아요. 우리 곁에 주춧돌처럼 앉아 계신 할머니가 그 시간의 탑이지요.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20.04.27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폴리 네르(1880~1919)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옴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 우리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20.04.23
아직은 행복하다/김종희 아직은 행복하다/김종희 진실로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정치나 경제나 예술이나 노동이 아니라 해와 달과 별과 구름과 바람이다 언제나 해가 동쪽에서 뜨리라 믿고 있는 우리들 그 믿음을 한 번도 배반당해 본 적이 없는 우리들 아직은 행복하다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20.04.15
오독/이기철 오독/이기철 나무가 직립하는 데는 백만 년이 걸렸을지 모를 일이라고 겨울나무를 보며 생각한다 나무의 마음을 읽는 데는 참 오래 걸린다 사람보다 먼저 땅을 차지했을 나무 사람보다 먼저 경사를 딛고 일어선 나무 나문들 어찌 제자리에만 서 있고 싶겠는가 나비 날아가는 것 보면 얼..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20.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