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1 / 김용택 섬진강 1 /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4
그 여자네 집 / 김용택 그 여자네 집 /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4
나의 시가 걸어온 길 나의 시가 걸어온 길 고 은(시인) 저는 시를 쓰지 않을 때에는 폐인에 가까운 존재가 됩니다. 때때로 세상에 대해 판단 정지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또 아주 멍청해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시 한 편이 나오면 눈이 번쩍거리고 뭔가 살아야겠다는 용솟음 같은 게 차오르곤 하죠. 시를 쓴 뒤에는 뭔..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4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4
신 부 신 부 - 서정주 -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4
손무덤 손무덤 -박노해-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4
상 리 과 원 상 리 과 원 - 서정주 -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漢江水)나 낙동강(洛東江) 상류와도 같은 융융(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4
산 유 화 산 유 화 - 김소월 -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山에 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진달래꽃>(1924)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4
눈길 / 고은 눈 길 - 고 은 -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4
농무 / 신경림 농 무 - 신경림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