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발들을 위한 노래 헤매는 발들을 위한 노래 강은교 지나간다 집들이. 꽁꽁 언 아이들이. 생각에 잠겨 겨울 바람이. 어릴 때 나는 흐르는 물가에 살았다. 아침이면 웃으며 물이 나를 씻었고 밤이면 지는 해가 내 발을 따스히 덮어 주었다. 나는 걷지 않았다. 달리지도 않았다. 그저 웃음. 그러면 내 발이 나를 똑바로 세워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5
돌아 돌아 강은교 너 아직 거기 있느냐 사월에 던진 돌아, 꽃샘바람 몹시도 불어가는 길 모퉁이 연탄재며 밥찌꺼기 혹은 목 떨어진 개나리꽃 새 꾸부정하게 끼어앉아 깨진 머리로 빛나는 돌아 으스름 무렵이면 한 잎 가득 피 베어문 하늘이 네 얼굴처럼 달려온다. 날이라도 궂어 출출출 비 내리쏟는 날에는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5
그대의 들 그대의 들 강은교 `왜 나는 조그마한 일로 분개하는가'로 시작되는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하네 하찮은 것들의 피비린내여 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여 평화여 밥알을 흘리곤 밥알을 하나씩 줍듯이 먼지를 흘리곤 먼지를 하나씩 줍듯이 핏방울 하나 하나 그대의 들에선 조심히 주워야 하네 파리처..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5
구걸하는 한 여자를 위한 노래 구걸하는 한 여자를 위한 노래 강은교 우리는 언제나 거기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혀와 혀를 불붙게 하며 눈물로 빛과 빛을 싸우게 하며 다정한 고름 고름 속에 오래 서 있은 허리를 무너지게 하며, 황사(黃沙) 날아가는 무덤 가장자리에서. 그곳 천정은 불붙은 태양이었고 바닥은 썩은 이빨의 늪이..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5
가을의 서 / 강은교 가을의 서 강은교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여자를 보아라 종이처럼 그 여자 오늘 구겨짐을 보아라 구겨지며 늘 비 흐름을 비 흐르며 그 여자 길밖으로 떠나감을 보아라 모든 길밖에 흐르는 길동무들을 보아라 언제나 싸우고 있는 길의 밤꿈을 보아라 정오엔 많은 바람으로 펄럭이다가 사라지는 그 여자..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5
긴 겨울에 이어지는 봄이 우리인 것을 - 고 은 긴 겨울에 이어지는 봄이 우리인 것을 - 고 은 우리나라 사람 여싯여싯 질겨서 지난 겨울 큰 추위에도 얼어죽지 않고 무사히 보냈습니다 그러나 삼한사온 없어진 그런 겨울 백 번만 살면 너도 나도 겨울처럼 산처럼 깊어지겠습니다 추위로 사람이 얼어죽기도 하지만 사람이 추위에 깊어집니다 우리나..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5
삶 - 고 은 삶 - 고 은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엇을..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5
부치지 않은 편지 - 고 은 부치지 않은 편지 - 고 은 어느 누구의 권세 한 오리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숱한 생멸 속에서 지난 세월 한 번도 거를 줄 모르고 꽃들은 절로 피었습니다 내 잠든 어리석음도 함께 흩뿌린 노랫소리 개나리꽃들이었습니다 그런 노래 저만치서 벙어리같이 벙어리같이 백목련꽃들이었습니다 여름이 왔습..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5
첫눈 - 고 은 첫눈 - 고 은 첫눈 온다 이 시대 죽지 말라고 첫눈 온다 할 일 많아 산이고 물인 이 멍든 강산에 첫눈 온다 그 언제였던가 처음으로 손 잡은 떨림이여 새로움이여 그 첫사랑으로 빈 나뭇가지마다 빛나던 이름이여 이제 그 이름 아득한 거리에 첫눈 온다 돌이킬 수 없이 내 순결과 오욕 헐헐 바쳐 여기까..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5
새해 두어 마디 말씀 - 고 은 새해 두어 마디 말씀 - 고 은 새해 왔다고 지난날보다 껑충껑충 뛰어 端午날 열일곱짜리 풋가슴 널뛰기로 하루 아침에 찬란한 세상에 닿기야 하리오? 새해도 여느 여느 새해인지라 궂은 일 못된 일 거푸 있을 터이고 때로 그런 것들을 칼로 베이듯 잘라버리는 해와 같은 웃음소리 있을 터이니 우리 아..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09.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