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서가(序歌)’ - 이근배(1940~ )

시인 최주식 2009. 12. 6. 21:59

서가(序歌)’ - 이근배(1940~ )

 

 

가을의 첫 줄을 쓴다

깊이 생채기 진 여름의 끝의 자국

흙탕물이 쓸고 간 찌꺼기를 비집고

맑은 하늘의 한 자락을 마시는

들풀의 숨소리를 듣는다

금실 같은 볕살을 가슴에 받아도

터뜨릴 꽃씨 하나 없이

쭉정이 진 날들

이제 바람이 불면

마른 잎으로 떨어져 누울

나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과 산다는 것의

뒤섞임과 소용돌이 속에서

쨍한 푸르름에도

헹궈지지 않는 슬픔을

가을의 첫 줄에 쓴다.



여름내 열어뒀던 창문, 새벽이면 닫는다. 언뜻 부는 바람, 가느다란 풀벌레 소리, 시리다. 가을 첫 줄은 이렇게 몸 시리고 마음 외롭다. 일궈 여문 것 많아도 쭉정이 진 나날 같고 햇살 쨍한 푸르름에도 눈물 나는 계절. 외로워서 서럽고 그리운 우리네 삶의 맨얼굴 같은 가을이 왔다.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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