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序歌)’ - 이근배(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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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생채기 진 여름의 끝의 자국
흙탕물이 쓸고 간 찌꺼기를 비집고
맑은 하늘의 한 자락을 마시는
들풀의 숨소리를 듣는다
금실 같은 볕살을 가슴에 받아도
터뜨릴 꽃씨 하나 없이
쭉정이 진 날들
이제 바람이 불면
마른 잎으로 떨어져 누울
나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과 산다는 것의
뒤섞임과 소용돌이 속에서
쨍한 푸르름에도
헹궈지지 않는 슬픔을
가을의 첫 줄에 쓴다.
여름내 열어뒀던 창문, 새벽이면 닫는다. 언뜻 부는 바람, 가느다란 풀벌레 소리, 시리다. 가을 첫 줄은 이렇게 몸 시리고 마음 외롭다. 일궈 여문 것 많아도 쭉정이 진 나날 같고 햇살 쨍한 푸르름에도 눈물 나는 계절. 외로워서 서럽고 그리운 우리네 삶의 맨얼굴 같은 가을이 왔다.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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