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진화론 외 1편 / 조명
- 동해에서
그리하여 너의 정수리에서는 해당화가 피어날 것이며
신생의 박동새는 수평선 너머를 노래할 것이다
백두대간의 절벽아!
나는 진화하기 싫어하는 너의 두개골을 때린다
썰물로 억년을 생각하고 밀물로 억년을 달려와
온몸 던져 깨지면서
옳은 진화를 위한 경전을 새기기 위함이다
정지된 살점은 파내고 살아있는 뼛골은 돋운다
화강암 가슴팍과 흑요암 두개골을 1밀리미터 파는 데
억겁의 생이 돌아간다 할지라도
어제 같은 오늘은 죽은 내일이다
너의 척추에 골반만 한 상실의 구멍이 뚫릴다면
연인을 태운 배가 노을을 밀며 들어설 것이다
우리 별의 몸뚱이가 통째로 타오르던 날 있었다
우리 별을 정신이 칠흑 어둠의 냉기로 식어가던 날 있었다
우리들의 별이 마지막 입김을 하늘로 토하던 날
하늘은 새로운 물질의 비를 내렸다
그때, 깊은 상처의 골짜기에 바다가 있었다
누가, 스스로 새로워지는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서 길렀겠느냐
출렁이는 생명의 품에서 몸을 일으켜
백색 갈기를 세우고 돌진하는 나의 포효는
바다의 사자후가 아니겠느냐
백두대간의 절벽아!
진화에서 밀려난 너의 두개골 가루를 박차면서
아이들은 눈부신 날갯죽지를 펴고 해변을 날아오를 것이며
어른들은
발바닥 밑으로 무너져 내리는 모래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난산 / 조명
말랑말랑,
연한 정수리부터 빠져나가야 할 세상의 관문 질에,
태아는 발부터 밀어 넣다 사타구니에 걸리고,
손을 들이밀다 갈비뼈에 걸리며,
태변의 늪에 얼굴을 묻고 할딱거리다가,
다이빙하듯
다시 두 팔을 모아 힘차게 시도해보다 휘청,
목을 젖히며 퉁겨져 나와
어둠 한구석에 웅크리고 주눅든 주먹을 느릿느릿 빨다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통찰의 눈동자가 열려
그 동그란 두개골부터 부드럽게 진입시키는데 아뿔사!
때를 놓쳐버린 머리는 점점 굳어
세상과 질과 태아가 동시에 악을 쓰는데도,
문이 열리다 닫히고 열리다 멈추는 바람에, 우불두불,
외계인처럼 일그러진 두상은 기형,
탯줄 끊기자마자,
안에서도 밖에서도 외면당하는 이런, 탄생
도처에 있다.
시집 <여왕코끼리의 힘> 2008. 민음사
조명 시인
대전 유성 출신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졸업 예정
2003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
2008년 시집 <여왕코끼리의 힘>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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