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쉬어가는 글

조동범 시인의 첫시집

시인 최주식 2010. 1. 28. 23:02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2006년 문학동네)

 

조동범 시인
1970년 경기 안양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시 「그리운 남극」 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작가 자서"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선 체
도너츠와 커피를 팔았던 적이 있다.
어느 곳 한번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이다. 싱싱한 날것이다.
 
준희에게 내 마음 한 조각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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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석(문학평론가)
 
조동범이 이 시집에서 주목하는 공간은 아이스크림 가게, 도너츠 가게, 버거킹, 안경점 등이다. 이 공간들은 "평균적인" 변화함과 번쩍임 때문에 도회적 삶의 표정이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공히, 쇼윈도를 지닌 전시적 공간이기도 하다. 실상, 시인이 이공간들에 주목하는 것은 후자 때문이다. "찬란과 풍요"로 요약되는 "평균적" 문화 이해를 깨뜨리며 우리의 눈을 "찌르는"것은 쇼윈도 너머에 전시된 죽음이다.풍요와 빛남의 거리, 국경일처럼 흥성이는 곳에서 그는 밀폐와 죽음을 본다. 전시된 것은 풍요가 아니라 죽음이다.
 
 
 
최두석(시인)
 
시를 언어로 지은 집에 비유할 때 조동범이 주로 구사하는 건축술은 묘사이다. 시집 한 권이 묘사로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그는 묘사의 힘을 신뢰하는 시인이다. 짐짓 냉정한 관찰자의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시선은 주로 편의점이나 주유소 같은 현대문명의 상징물들을 향하는데 그러한 사물들을 묘사함으로써 무기력하고 불모화된 현대인의 삶을 부각시킨다. 가령 버려진 냉장고를 묘사하는 시구, "냉장고는 내장 가득 느리게 부패하던 식욕의 흔적을 더듬는다"는 우리의 마비된 일상을 섬뜩하게 환기시킨다.
 
 
 
함민복(시인)
 
"동물원의 펭귄, 물 위에 누워 나침반처럼 극점을 가리키고 있다."
"닭은 무정란 무수히 쏟아지던 과거를 들춰/아득한 모성을 더듬는다."
조동범 시인의 시는 도회적 삶의 쓸쓸함을 서늘하게 발효시키고 있다.
빙하기, 주유소, 개, 여우 등의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야성을 상실한 현대인의,야성에 대한 그리움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냉장고 속에 집어넣는 조동범 시인의 결투가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