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풀벌레 소리를 수확하는 계절 / 마경덕

시인 최주식 2011. 11. 4. 21:28

풀벌레 소리를 수확하는 계절 / 마경덕

 

바람의 체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열린 벌레소리가 익었다

방울벌레 풀종다리 철써기 귀뚜라미

잡초가 소리를 수확하는 계절

제초제를 뿌린 곳에는 소리의 씨가 말랐다

 

여름내 소리를 키우느라 허리 굽은 하천가 방가지똥 고마리

오가는 발소리에 흠칫 일손을 멈춘다

땡볕아래 그늘을 짜고 품에 맞는 어둠을 들인 건

누대를 이어온 그들의 농사법

 

바람에 혀끝이 서늘해질 때 

으슥한 둑길에 떨어지는 맑고 처량한 소리 

잘 여물었나, 이리저리 흔들어보고 완숙한 소리만 골라 출하하는 야간작업장  

물기가 말라 또르르, 먼 곳까지 굴러가면 상품이다

 

달빛과 주고받는 저 밀거래

제철에 거둔 소리의 값은 얼마일까

만돌린을 켜는 풀종다리, 양금을 두드리는 방울벌레

잡초들이 재배한 완벽한 합주는 어느 악기보다 귀맛이 좋다

그들이 소리를 키운 지는 오래지만

맑고 구슬픈 소리가 잡초의 농사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리가 젖으면 무거워 구르지 못한다고

일손을 놓고 풀잎도 쉰다

그런 날은 둑길에 빗소리만 왁자하다

 

격월간 <유심> 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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