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 / 신준수
버려진 하천부지 고만고만한 뙈기밭 살붙이처럼 붙어있는데요 상추 파 쑥갓 고추 토마토 가지 시금치 얼갈이 오밀조밀 어깨 겨누고 있는 그게, 한 땀 한 땀 이어붙인 조각보입니다
꾸불텅꾸불텅 민달팽이
육필 선연한
푸진 밥상입니다
세상에 밥을 탐하는 것들
시장기 급한 여름이 확, 밥상보 걷어내듯 물길이 휩쓸고 간 지난해 덜 익은 것들 날것으로 쓸려간 밥상머리 몇 남은 건건이 일으켜 쿵쿵 지지대 박던 노인을 오늘 다시 봅니다
조심조심 밥물 맞추듯 푸성귀 매만지는 남루한 저 손길도 언제 쓸려갈지 모르는 밥상처럼 위태위태합니다
허겁지겁 허기 속으로 잦아든 초록의 밥상이나 초록에서 여물고 있는 씨앗들 묵정밭 같은 저 손에 다시 씨앗 떨굴지도 의문입니다
비어있는 밭이라야 다시 씨앗 묻을 수 있듯 가보지 않은 저쪽 어디 빈 밭을 점찍어 두었을지도 모르지요
맨 처음 고개 숙이고 나오던 물음표 같은 떡잎처럼
저 노인 구부정한 것이 새싹을 닮았습니다
곧 어느 곳으로든 옮겨질 모종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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