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꿩 장서방 / 이명수
나이 백다섯 된 집안 어른이 돌아가셨습니다.
여든 다섯 아드님과 여든 넷 며느님이 상주. 목회자인 장손자와 신도들이 둘러앉아 추도 예배 중인데, 뜬금없이 상주 며느님이 벌떡 일어나 웬 노래를 불러댑니다.
“꿩꿩 장서방 무얼 먹고 사나.”
좌중은 한바탕 웃음판이 되고, 아드님이 안절부절하는 게 보기에 민망했으나 호상에 흉은 아닐 듯합니다.
하지만, 속사정이 궁금했지요.
백다섯의 시어머님은 돌아가기 전까지 여든 넷 며느님의 치매수발을 드셨다 합니다.
며느님이 기억의 끈을 놓지 않게 매일같이 찬송가를 부르셨는데, 치매 오기 전까지 함께 불렀던 찬송가는 깡그리 잊고, 어린 시절 동무들과 불렀던 놀이 노래를 기억해 냈다는 겁니다.
치매가 가까운 과거부터 차례로 지워나가 마침내 어렸을 적 먼 과거로 돌아간다는 말은 들었지만 눈앞에서 목도하니 어안이 벙벙했어요.
“꿩꿩 장서방 무얼 먹고 사나.”
당신이 떠나기 전, 며느님이 어린 시절 기억만이라도 꼭 잡고 있으라고 매일같이 이 구전동요를 함께 불렀던 영정 속 저 시어머님이 참 장한 장서방이 아니겠습니까.
날 저물어 시어머님은 하늘나라로, 며느님은 어린 날로 돌아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꿩꿩 장서방 무얼 먹고 사나.”
<시와 시> 제1회 작품상 수상작.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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