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장국밥/민병도

시인 최주식 2012. 7. 11. 21:58

 

장국밥

울 오매 뼈가 다 녹은 청도 장날 난전에서
목이 타는 나무처럼 흙비 흠뻑 맞다가
설움을 붉게 우려낸 장국밥을 먹는다.

5원짜리 부추 몇 단 3원에도 팔지 못하고
윤사월 뙤약볕에 부추보다 늘처져도
하굣길 기다렸다가 둘이서 함께 먹던……

내 미처 그때는 셈하지 못하였지만
한 그릇에 부추가 열 단, 당신은 차마 못 먹고
때늦은 점심을 핑계로 울며 먹던 그 장국밥.

 

―민병도(1953~ )


윤사월이면 이맘때일까. 푸성귀들이 푸르게 솟는 철이니 부추도 싱싱 올라오겠다. 그 부추를 잘라 머리 빗기듯 가지런히 묶으면 그대로 좋은 상품이 되었다. 그렇게 가다듬은 부추를 난전(亂廛)에 펼쳐놓고 앉아 기다리던 어머니들의 손, 손님 역시 찬거리 사러 나오는 또 다른 어머니들의 손이다.

그런데 부추가 '5원짜리'면 어느 시절 얘기인가. 그즈음 어린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장국밥을 먹는 장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그것도 차마 못 먹던 어머니의 마음은 이렇게 뒤늦게 더듬어볼밖에…. 뙤약볕에 뼈가 녹아내리는 먼 길과 노동 끝에 펴던 난전들, 그 앞에서는 뭔가 사야만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저세상에서는 어머니들이 또 무슨 난전을 펴놓고 기다리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