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저수지는 웃는다/유홍준

시인 최주식 2012. 7. 11. 21:59

저수지는 웃는다

저수지에 간다
밤이 되면 붕어가 주둥이로
보름달을 툭 툭 밀며 노는 저수지에 간다

요즈음의 내 낙은
저수지 둑에 오래 앉아 있는 것
아무 돌멩이나 하나 주워 멀리 던져보는 것

돌을 던져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는 저수지의 웃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긴긴 한숨을 내뱉어 보는 것

알겠다 저수지는
돌을 던져 괴롭혀도 웃는다 일평생 물로 웃기만 한다

생전에 후련하게 터지기는 글러먹은 둑, 내가슴팍도 웃는다

―유홍준(1963~  )

/유재일
물가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은 다 내 친구다.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할 것 같고,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은 내력을 이미 다 안다. 상선약수(上善若水·최고 선은 물과 같다)니, 흐르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어쩌고 하는 것은 뒤미처 오는 말일 뿐 물가에 앉은 사람은 그것 '이전'이다.

내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다 그렇게 그 자세로, 말하자면 두 손을 깍지로 끼고 무릎을 싸안고 실한 풀포기 위에 앉아 구름도, 저녁별도 보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조상 대대로 흘러내려 오는 물길의 저수지였으니 돌멩이 하나 던져 만드는 무위(無爲)의 파문 하나로 그 터져나갈 것 같은, 그러나 아주 터져나가면 안 되는 거대한 무거움을 다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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