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황혼 이혼 / 정해영

시인 최주식 2012. 11. 25. 21:31

황혼 이혼 / 정해영



 

흙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실핏줄 같은 오지의 산길까지

따라 다니던 여행 가방이

미끈하게 뻗은 도시의 길

한 복판에서

툭 벌어졌다

 

저장 식품처럼 갇힌 울분이

팽창하여 터져 버린 것이다

악취가 나는

못 볼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십 년을 동행했던 허름한 가방

지퍼의 한쪽이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낡은 부부가 두 쪽으로 나눠진다

함께 물들인 저녁놀

찢어진다


 

- 월간 현대시, 2010년 6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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