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드는 여자 /문정희 물 만드는 여자 /문정희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2.12.26
고속도로 / 김기택 고속도로 / 김기택 거무스름한 길이 뽑혀져나온다. 지름이 십 미터도 넘을 것 같은 굵은 밧줄이 뽑혀져나온다. 지평선에서 산허리에서 숲에서 쉴새없이 뽑혀져나온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지치지 않고 뽑혀져나온다. 박찬호의 직구 같은 속도로 뽑혀져나온다. 거칠 것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2.11.25
직소폭포/안도현 직소폭포/안도현 저 속수무책, 속수무책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필시 뒤에서 물줄기를 훈련시키는 누군가의 손이 있지 않고서야 벼랑을 저렇게 뛰어내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오 물방울들의 연병장이 있지 않고서야 저럴 수가 없소 저 강성해진 물줄기로 채찍을 만들어 휘..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2.11.25
국화꽃 그늘과 쥐수염붓 / 안도현 국화꽃 그늘과 쥐수염붓 / 안도현 국화꽃 그늘이 분(盆)마다 쌓여 있는 걸 내심 아까워하고 있었다 하루는 쥐수염으로 만든 붓으로 그늘을 쓸어 담다가 저녁 무렵 담 너머 지나가던 노인 두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한 사람이 국화꽃 그늘을 얼마를 주면 팔 수 있느냐고 물었다 또 한 사람은..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2.11.25
인 생/김용택 인 생/김용택 사람이, 사는 것이 별것인가요? 다 눈물의 굽이에서 울고 싶고 기쁨의 순간에 속절없이 뜀박질하고 싶은 것이지요. 사랑이, 인생이 별것인가요?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2.10.12
오, 따뜻함이여/정현종 오, 따뜻함이여/정현종 군밤 한 봉지를 사서 가방에 넣어 버스를 타고 무릎 위에 놨는데,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갓 구운 군밤의 온기-순간 나는 마냥 행복해진다 태양과 집과 화로와 정다움과 품과 그리고 나그네 길과...... 오, 모든 따뜻함이여 행복의 원천이여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2.07.19
돼지국밥 한그릇/ 정이랑 돼지국밥 한그릇/ 정이랑 태어나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말아드리지 못했다 올해 칠순의 늙은 아버지와 마주 앉아 먹는 국밥 눈동자 한번 들여다보지 못하고 살았는데 할 말이 없다 "고기가 많네요, 아버지." 아직도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그릇으로 고기 건네고 "이것만 해도 많다, 너나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2.07.19
왜 하필 사과일까?/유안진 왜 하필 사과일까? 유안진 1. 못 먹게 하실 걸 왜 심었냐고? 독자가 있어 시를 쓰느냐? 존재만으로도 가치價値인 게 왜 없겠느냐 먹지 말라니까 더 먹고 싶어졌다고? 자유의지에도 절제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2. 문제 아닌 걸 문제삼지 말자 문제이거든 더 문제삼지 말자 문제없음도 문제일..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2.07.19
오리의 탁란 - 강희안 오리의 탁란 - 강희안 저 흉악한 오리는 대체 몇 개의 알이나 닭의 둥지에 숨겨놓은 걸까 까끌까끌한 보리 모개를 먹었는지 오리들이 꽤액 꽥 숨넘어가고 있다 둥근 주둥이를 벌리며 목청을 세우고 있다 가끔씩 닭의 문간에선 병아리의 부화가 시작되었는지 콕콕콕, 생명의 코크를 여는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2.07.19
공간 밖 공간에도 봄이 살아난다/김지향 공간 밖 공간에도 봄이 살아난다/김지향 어제는 사이트와 사이트 사이를 마구잡이로 들락거린 세상소리를 마셨다 오늘은 모두가 한꺼번에 세상소리로 뒤엉켜 고속 메일이 되어 천지사방에 흩어진다 삶을 짜서 널어놓은 빨랫줄 밑에서 뚝뚝 떨어지는 삶의 옹아리를 받아먹은 씨앗들을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2.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