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있는 햇볕이 아깝다 /정진규 놀고있는 햇볕이 아깝다 /정진규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을 아시는가 이것은 나락도 거두어 갈무리하고 고추도 말려서 장에 내고 참깨도 털고 겨우 한가해지기 시작하던 늦가을 어느 날 농사꾼 아우가 한 말이다. 어디 버릴 것이 있겠는가 열매 살려내는 햇볕 그걸 버린다는 말씀이 당키나한..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0.15
가을의 소원 / 이시영 가을의 소원 / 이시영 내 나이 마흔일곱, 나 앞으로 무슨 큰일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진즉 그것을 알았어야지!) 틈나면(실업자라면 더욱 좋고) 남원에서 곡성 거쳐 구례 가는 섬진강 길을 머리 위의 굵은 밀잠자리떼 동무 삼아 터덜터덜 걷다가 거기 압록 지나 강변횟집에 들러 아직도 곰의 손발을 지닌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0.15
너의 사랑은 / 조병화 너의 사랑은 / 조병화 하늘에서 밤마다 무수히 반짝이고 있는 별들이 제각기, 제자리에서 절대적인 존재이듯이 나무 줄기에서 무수히 피어나 있는 꽃송이들이 제각기 제자리에서 절대적인 존재이듯이 바람 부는 넓은 들판에서 무수히 생글생글 고개 흔들며 피어 있는 작은 들꽃들이 제각기, 제자리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0.15
세들어 사는 동안 / 박라연 세들어 사는 동안 / 박라연 나. 이런길을 만날 수 있다면 이 길을 손 잡고 가고 싶은 사람이 있네 먼지 한 톨 소음 한 점 없어 보이는 이 길을따라 걷다 보면 나도 그도 정갈한 영혼을 지닐 것 같아 이 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 처럼 이 길을 오고 가는 자동차의 탄력처럼 나 아직도 갈 곳이 있고 가서 씨 뿌..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9.08
마음의 수수밭/천 양 희 마음의 수수밭/천 양 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 잎 몇 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9.08
구월이 오면 / 안 도 현 구월이 오면 / 안 도 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 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 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 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 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9.08
따뜻한 봄날 /김형영 따뜻한 봄날 /김형영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움큼 한움큼 솔잎을 따서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6.05
서산-내 고향/이생진 서산-내 고향/이생진 내 고향 서산에도 바다가 있었다 그 바다가 나의 유년을 키워줄 무렵 나는 하늘보다 바다가 좋았다 그러던 바다가 이젠 없다 사람들은 가난한 바다를 몰아내고 광활한 들을 들여왔다 그러고는 겨울마다 철새가 찾아오길 기다린다 그만큼 부유해졌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나는 그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5.26
너는 늙지 마라/이생진 너는 늙지 마라/이생진 전철을 공짜로 타는 것도 미안한데 피곤한 젊은이의 자리까지 빼앗아 미안하다 ‘너도 늙어봐라’ 이건 악담이다 아니다 나만 늙고 말 테니 너는 늙지 마라 늙으면 서러운 게 한두 가지 아니다 너는 늙지 마라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5.25
바람 부는 질마재/이생진 바람 부는 질마재/이생진 부안면 선운리 오딧물 드는 마을 질마재 늘어진 밤나무 꽃 그늘에서 개구리는 울고 나는 미당의 시문학관 옥상에 올라가 그분이 오기를 기다리네 끝내 그분은 오지 않고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 이라며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던 길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