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이생진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이생진 -화첩설화畵帖說話 서울 어디선가 택시를 탔다 택시 앞자리에 시집만 스무 권 꽂혀 있다 그 속에 내 시집도 들어 있다 그래서 ‘시를 좋아하시네요?’ 했더니 “네, 읽던 시집을 꽂아놨어요”하고 쳐다본다 ‘내 시집도 있네’ 했더니 “누구신데” 한다 ‘그리운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5.25
겸손하게 또는 반갑게/이생진 겸손하게 또는 반갑게/이생진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죽음을 맞는 일이다 겸손하게 또는 반갑게 이 말은 거짓일 수 있으나 알고 보면 참말이다 확실하다 어머니는 지금 죽음 속에 계시니 확실하다 이건 감각이 아니다 그렇다고 초월도 아니다 조용히 어머니 손을 잡는다 어찌 이게 죽음일 수 있는가 행..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5.25
그만 살아야지/이생진 그만 살아야지/이생진 이젠 그만 살아야지 하다가도 시가 바람을 일으키면 벌떡 일어나 시를 쓴다 그것 때문에 그럭저럭 80을 넘겼다 내가 생각해도 그리 미운 짓은 아니다 오늘은 아예 옛날처럼 배낭을 메고 멀리 섬으로 간다고 나섰다 목포 앞바다 여객선터미널에서 뱃시간을 챙기는 나 그것 이상의..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5.25
비양도 등대/이생진 비양도 등대 협재 해변에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돌아서는 사람들의 몫까지 싸 들고 비양도에 올라가 등대 앞에 풀어놓는다 고독은 선천성 농아 문을 두들겨도 열지 않고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소리쳐도 대답이 없다 그게 고독의 본질이다 다시 배를 타고 건너와 협재 해변에 서서 그 쓸쓸한 입석을 사..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5.25
조그만 사랑/황 동규 조그만 사랑/황 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4.02
그 사람/김용택 그 사람/김용택 작은 바람결에도 멀리 흔들리는 아주 작은 풀잎같이 얇은 산그늘에 붙잡혀도 가지 못하는 풀꽃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네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이 지어 준 작은 강마을 작은 흙집에서 살며 그 집 그 방에 달빛이 새어 들면 달빛으로 시를 쓰고 해와 달이 별과 사람들이 찾아와 밥 먹고 놀..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4.02
늙어가는 아내에게/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4.02
봄비/이형산 봄비/이형산 너였구나 때만 되면 가슴앓이 하는 밤 뒤척이며 돌아누울 때마다 들리는 소리 내가 울고 있는 줄 알았는데 너였구나 밤새도록 아픔 씻는 소리 내 아픔 호소인 줄 알았는데 너였구나 내 속 터지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너와 내가 실컷 울고 나면 그 아픔 꽃이 되어 흐드러지게 꽃향기 날리겠..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4.02
풍경의 깊이 ... 김사인 풍경의 깊이 ...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3.25
누가 울고 간다 / 문태준 누가 울고 간다 / 문태준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불러 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