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문태준 가재미/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실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켝 눈물 쏟아 낸다 한쪽 눈이 다른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1.10
우울한 스타킹 / 신현림 우울한 스타킹 / 신현림 진흙눈이라도 퍼부울 듯이 하늘이 우울하다 유언장처럼 십이월은 우울하다 매년, 일년은 사서 금방 올이 나가는 스타킹이다 스타킹 끝을 잡은 당신은 쓸쓸해서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처럼 흐물흐물해질 것 같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탄광의 석탄처럼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1.10
나의 싸움 / 신현림 나의 싸움 / 신현림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것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위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1.10
초승달, 밤배, 가족사진 / 최정례 초승달, 밤배, 가족사진 / 최정례 끝을 날카롭게 구부리고 지붕 위를 떠 가는 초승달 왜 입 안에 신 침이 고이는 것일까 껍질 반쯤 벗겨진 사이로 신물 주르륵 흘러내리고 노란 껍질 익다 못해 터진 그 사이로 안개처럼 떠 있는 앞에는 키작은 아이들 뒤에는 두루마기를 입은 100년..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1.10
弔燈이 있는 풍경 / 문정희 弔燈이 있는 풍경 / 문정희 이내 조등이 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80세까지 장수를 했으니까 우는 척만 했다 오랜 병석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죽었다 내 엄마, 그 눈물이 그 사람이 죽었다 저녁이 되자 더 기막힌 일이 일어났다 내..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1.10
放心 / 손택수 放心 /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앞 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 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 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1.10
자작나무 내 인생 외 2편 / 정끝별 자작나무 내 인생 / 정끝별 속 깊은 기침을 오래 하더니 무엇이 터졌을까 명치끝에 누르스름한 멍이 배어 나왔다 길가에 벌(罰)처럼 선 자작나무 저 속에서는 무엇이 터졌기에 저리 흰빛이 배어 나오는 걸까 잎과 꽃 세상 모든 색들 다 버리고 해 달 별 세상 모든 빛들 제 속에 묻어..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1.10
어둠은 별들의 빛남을 위하여 -우수의 바람 2/김후란 어둠은 별들의 빛남을 위하여 -우수의 바람 2/김후란 어둠은 별들의 빛남을 위하여 더욱 짙은 어둠으로 침묵한다. 밤은 어디서부터 와서 어느 깊이로 잠드는가 별빛 눈부신 밤 흐르는 것의 멈춤이 있음을 생각하며 별들 몸짓 사이로 깊이 모를 꿈을 가늠해 본다 오늘은 나도 누군..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1.04
추포도 소금꽃/이생진 추포도 소금꽃/이생진 염전에서 소금물 받아먹고 사는 함초鹹草 짜다고 찌푸리는 일이 없다 심해숙沈海淑씨도 함초 같다 이름 석자가 모두 삼수변이라며 바다와의 인연을 자랑하는 여자 육지에서 시집와 얻은 벼슬 부지런한 여리장女里長 깊은 바다 맑은 물 심해숙深海淑 추포..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1.02
찰옥수수가 익는 저녁/ 임동윤 찰옥수수가 익는 저녁/ 임동윤 감자꽃이 시들면서 정수리마다 자글자글 땡볕이 쏟아졌다 장독대가 봉숭아꽃으로 알록달록 손톱물이 들고 마른 꼬투리가 제 몸을 열어 탁 타닥 뒷마당을 흔들 때, 옥수수는 길게 늘어뜨린 턱수염을 하얗게 말리면서 잠자리들은 여름의 끝에서 목말을 탔다 싸리나무 울..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1.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