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루비아 / 신현정 사루비아 / 신현정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에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현대시학> 2009. 11월호 * '바보사막'의 신현정 시인이 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15
중과부적衆寡不敵 / 김사인 중과부적衆寡不敵 / 김사인 조카학비 몇 푼 거드니 아이들 등록금이 빠듯하다 마을금고 이자는 이쪽 카드로 빌려내고 이쪽은 저쪽 카드로 돌려 막는다 막자 시골 노인들 팔순 오고 며칠 지나 관절염으로 장모 입원 하신다 다시 자동차세와 통신요금내고 은행카드 대출 할부금 막고 있는데 오래 고생..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15
나의 라이벌 / 천양희 나의 라이벌 / 천양희 사는 것이 더 어렵다고 시인은 말하고 산 사람이 더 무섭다고 염장이는 말하네 어렵고 무서운 건 살 때 뿐이지 딱 일주일만 헤엄치고 진흙속에 박혀 죽은 듯이 사는 폐어肺漁처럼 죽을 듯 사는 삶도 있을 것이네 세상을 죽으라 따라다녔으나 세상은 내게 무릎 꿇어야 보이는 작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15
아랫목 / 고영민 아랫목 / 고영민 한나절 새끼 낳을 곳을 찾아 울어대던 고양이가 잠잠하다 잠잠하다 불을 지피러 아궁이 앞에 앉으니 구들 깊은 곳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야옹지다 오늘밤 이 늙은 누대累代의 집은 구들 속 새끼를 밴 채 진통이 심하겠다 불 지피지마라 불 지피지마라 냉골에 모로 누워 식구들은 잠..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15
반과 반 / 백상웅 반과 반 / 백상웅 거기를 지날 때마다 나는 반반을 고민한다. 간판에는 장의사라고 반듯하게 박혀있고 미닫이문에는 영어로 드럼렛슨이라 적힌, 거기는 낡았지만 웃긴 구석이 있다. 관을 짜는 사람과 드럼을 두드리는 사람이 한 건물에 다른 집기를 들여 놓고는 한 사람이 염을 할 때, 한 사람은 스틱..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15
낙화를 따라가다 / 권운지 낙화를 따라가다 / 권운지 한 남자가 강물에 투신하였다고 아침 뉴스가 전한다. 뉴스를 전하는 화면 속으로 벚꽃 눈부신 봄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지나간다. 그 남자의 지난했을 생애가 간단명료하게 자막으로 처리 되었다.낙화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작은 파문도 일으키지 않았다.벼랑까지 떠밀려와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15
아버지가 이르신다 / 맹문재 아버지가 이르신다 / 맹문재 마을 이장이 농자금 추천을 자기편 사람들만 한다고 이르신다 중풍때문인지 손발이 뻣뻣하다고 이르신다 시제가 제대로 안된다고 이르신다 다 캐지않은 도라지밭을 땅 주인이 갈아엎었다고 이르신다 올해는 감나무가 시원찮다고 이르신다 날이 가물어 큰일이라고 이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15
믹서 / 김영미 믹서 / 김영미 원산지에 따라 생육사가 다른 각양각색의 과일들 믹서에 넣는다 스위치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 격동의 한 세기가 몰려온다 굉음을 울리며 칼날의 검은 회오리 속으로 빨려든다 꿈결처럼 빨강과 초록, 극좌와 극우가 손을 잡고 주황과 연두, 중도와 보수가 섞인다 과육 속 붉게 영근 따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15
순장 / 안효희 순장 / 안효희 그 속엔 장롱과 냉장고와 세탁기도 있지, 나의 사랑과 나의 궁핍과 나의 파열도 있지 꼬리를 단 시간이 재깍거리고, 날짜들이 깃발처럼 벽에 걸려 펄럭거리지, 건너편 고층빌딩이 통유리 넓은 창으로 24시간 들여다보지 행복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 점점 배가 불러지면, 아치형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15
病 / 정진경 病 / 정진경 아버지 주려고 담근 오디주 발효되기도 전에 아버지가 사라졌으므로 뚜껑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오디주 병 안에 밀봉되어 버렸고 아버지와 함께 순장된 오디를 나는 죽음이라 생각했다 존재할 의미를 상실했다고 생각한 어느 날 오디주 붉은 핏줄이 술병을 타고 오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