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눈물 / 배한봉 지구의 눈물 / 배한봉 둥근 것들은 눈물이 많다, 눈물왕국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칼로 수박을 쪼개다 수박의 눈물을 만난다 어제는 혀에 닿는 과육 맛에만 취해 수밀도를 먹으면서 몰랐지 사과 배 포도알까지 둥근 몸은 모두 달고 깊은 눈물왕국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걸 나는 눈물왕국을 사랑하는 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09
봄꿈을 꾸며 / 김종해 봄꿈을 꾸며 / 김종해 만약에 말이지요, 저의 임종 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열두 달 가운데 어느 달이 가장 마음에 들더냐 하느님게서 하문하신다면요, 저는 이월이요. 라고 서슴지 않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눈바람이 매운 이월이 끝나면 바로 언덕 너머 꽃 피는 봄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 네,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09
거미와 달 / 권혁수 거미와 달 / 권혁수 듣자니, 거미란 놈이 거리의 나뭇가지에다 미니홈페이지를 개설했다는군요 손님을 기다리시는 모양인데 하루 종일 푸른 하늘을 배경화면으로 깔고 구름과 시원한 비바람을 실시간으로 서비스해도 파리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네요 아무래도 수억 광년 떨어져 있는 별이나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09
휴일, 붉은 혹은 검은 / 최광임 휴일, 붉은 혹은 검은 / 최광임 며칠째 휴일인데요 떨이도 되지 않는 두어 물 간 생선 같은 날들이네요 궁둥이를 이고 걷는 할머니의 어물전 손가락만 닿아도 살점 문드러지는 물고기들 같아요 희멀겋게 백태 낀 물고기 눈에 잠긴 바다나 떠올리는 나도 며칠째 팔리지 않는 할머니의 생선이네요 한 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09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 강인한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 강인한 이른 아침 갓 구운 핑크의 냄새, 골목길에서 마주친 깜찍하고 상큼한 민트 향은 리본으로 치장한 케이크 상자처럼 궁금한 감정이에요. 초보에게 딱 맞는 체리핑크는 오전 열 시에 구워져 나오지요. 십대들이 많이 구매하지만 놀라지 마셔요, 때로는 삼사십대 아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09
육친/ 손택수 육친/ 손택수 책장에 침을 묻히는 건 어머니의 오래된 버릇 막 달인 간장 맛이라도 보듯 눌러 찍은 손가락을 혀에 갖다 대고 한참을 머물렀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곤 하지 세상엔 체액을 활자 위에 묻히지 않곤 넘어갈 수 없는 페이지가 있다네 혀의 동의 없이는 도무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페이지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09
중과부적衆寡不敵 / 김사인 중과부적衆寡不敵 / 김사인 조카학비 몇 푼 거드니 아이들 등록금이 빠듯하다 마을금고 이자는 이쪽 카드로 빌려내고 이쪽은 저쪽 카드로 돌려 막는다 막자 시골 노인들 팔순 오고 며칠 지나 관절염으로 장모 입원 하신다 다시 자동차세와 통신요금내고 은행카드 대출 할부금 막고 있는데 오래 고생..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28
나의 라이벌 / 천양희 나의 라이벌 / 천양희 사는 것이 더 어렵다고 시인은 말하고 산 사람이 더 무섭다고 염장이는 말하네 어렵고 무서운 건 살 때 뿐이지 딱 일주일만 헤엄치고 진흙속에 박혀 죽은 듯이 사는 폐어肺漁처럼 죽을 듯 사는 삶도 있을 것이네 세상을 죽으라 따라다녔으나 세상은 내게 무릎 꿇어야 보이는 작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28
반과 반 / 백상웅 반과 반 / 백상웅 거기를 지날 때마다 나는 반반을 고민한다. 간판에는 장의사라고 반듯하게 박혀있고 미닫이문에는 영어로 드럼렛슨이라 적힌, 거기는 낡았지만 웃긴 구석이 있다. 관을 짜는 사람과 드럼을 두드리는 사람이 한 건물에 다른 집기를 들여 놓고는 한 사람이 염을 할 때, 한 사람은 스틱..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28
낙화를 따라가다 / 권운지 낙화를 따라가다 / 권운지 한 남자가 강물에 투신하였다고 아침 뉴스가 전한다. 뉴스를 전하는 화면 속으로 벚꽃 눈부신 봄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지나간다. 그 남자의 지난했을 생애가 간단명료하게 자막으로 처리 되었다.낙화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작은 파문도 일으키지 않았다.벼랑까지 떠밀려와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