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하동/ 이종암 봄날, 하동/ 이종암 매화 피고 나니 산수유 피고 또 벚꽃이 피려고 꽃맹아리 저리 빨갛다 화개(花開) 지나는 중 꽃 피고 지는 사이 내 일생의 웃음도 눈물도 행行, 다 저기에 있다 시집<몸꽃>2010.애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01
몸꽃 / 이종암 몸꽃 / 이종암 -차근우 오어사 뒷마당 배배 뒤틀린 굵은 배롱나무 뇌성마비 1급 지체장애자 영호 형님 작은 아들 차근우 같다 말도 몸도 자꾸 안으로 말려들어 겨우 한마디씩 내던지는 말과 몸짓으로 차가운 세상 길 뚫고 나가 뜨거운 꽃송이 활활 피워 올리는 나무 푸른 대나무가 온몸의 힘 끌어 모아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01
포도밭이 있는 마을 / 전명숙 포도밭이 있는 마을 / 전명숙 원래 이 마을은 포도밭이었네. 포도밭을 갈아엎은 뒤 포도나무는 사라졌지만 뿌리의 기억은 지금도 살아있네. 포도넝쿨은 틈만 나면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네. 바닥으로 천장으로 기어나온 넝쿨손 잡아당겨 노란 줄무늬 무당거미가 몇 겹의 덫을 놓네. 아무도 몰래 피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01
이제 꽃피면 안되겠다 / 이성목 이제 꽃피면 안되겠다 / 이성목 소파가 꽃을 피우려는지 인조 가죽이 여러 갈래로 튼다. 갈라진 틈새로 노란 스펀지가 올라온다. 의자는 몇 해 전에 이미 꽃을 피웠다. 굵고 탄력 있는 스프링 꽃대가 아직도 등받이 근처 등뼈처럼 구부정하다. 아버지는 담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암은 어느 꽃의 구근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01
나이테 / 서화 나이테 / 서화 가뭄으로 저수지 바닥이 드러났다 뽀얗게 말라버린 가장자리를 짚으며 내려오는 산그늘 악물었던 이빨을 풀고 처박힌 냉장고를 기웃댄다 일그러진 문짝을 가리겠다고 수초들 힘껏 팔 뻗는데 멀리서 주위를 맴도는 왜가리들 냉동실에 떠다니는 물고기들을 살핀다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23
나이테 / 이종섶 나이테 / 이종섶 저 호수에 누가 돌을 던지고 갔는지 파문이 끊이질 않는다 딱딱한 껍데기로 울타리를 치고 감추려 하지만 중심에 박힌 돌이 일으키는 물결을 막지는 못한다 예민한 속살이 돌에 스칠 때마다 가지가 흔들리고 나뭇잎이 떨린다 햇볕이 들고 바람이 스치고 새들이 앉는 건 달빛과 별빛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23
결 / 이정록 결 / 이정록 철물점에 갔다가 톱날 묶음을 보았다 톱니들이 물결처럼 보였다, 손을 대면 물방울이 튀어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톱날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누군들 자르는 일에 몸담고 싶으랴 톱날을 어루만지며, 나는 얼음집에 가면 톱으로 엉킨 물을 푼다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23
우수 2009 / 정미정 우수 2009 / 정미정 비에 포박당한 도시는 이제야 차분해졌다 오리무중이던 사건을 곧 실토라도 할 듯 자분자분 다그치는 비 앞에 도시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왔다 다소 고무적이다 도시 남동쪽에서 아기 분 냄새를 맡았다는 진술과 한때 개나리 아랫도리가 젖어있더라는 진술을 들이대자 담배 한 개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23
밀착密着 / 권현형 밀착密着 / 권현형 한때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숨죽여 울곤 했다 서둘러 폭삭 늙어버리고 싶었다 슬픔도 폭삭 늙어버릴 줄 알았다 까무룩 혼절할 듯 높이 나는 새를 향해 셔터를 누르자 해가 툭 떨어진다 사라진 비행기처럼 잔해조차 없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한꺼번에 검어진 섬의 숲을 찍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23
아프니까 그댑니다 / 이정록 아프니까 그댑니다 / 이정록 암에 걸린 쥐 앞에 열두 씨앗 놓아둡니다 성한 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씨알 쪽으로 병든 쥐가 시름시름 다가가 그러모읍니다 오물오물 독경하듯 앞발로 받듭니다 병든 어미 소를 방목합니다 건강한 소들은 혀도 디밀지 않는 독풀 젖통 출렁이며 허연 혀로 감아챕니다 젖..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