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이안 모과/이안 모두들 못생겼다고 하지만 모과는 얼굴이 아니고 주먹이다 돌덩이만큼 단단한 주먹이다 <동시감상>: 최명란 그렇구나, 얼굴이 아니라 주먹이구나. 못생겼다고 놀려댔더니 얼굴이 아니구나. 그렇지, 주먹은 못생겨도 단단해야지. 돌덩이만큼 단단해야지. 예쁜 꽃이었던 것이 저리 단단한.. ♣ 詩그리고詩/한국동시, 동화 2010.09.11
불의 파문/천양희 불의 파문/천양희 불필요란 말이 불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들릴 때 불이 일으킨 파문을 본다 무작정 필요한 생의 불꽃들 불티 일으키며 불물 가리지 않고 불불불불 불길 쪽으로 몰려간다 장관이라니! 내가 불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물불을 잃어버렸나 생각에 잠긴 사이 불나비 떼 몰려와 맘속까지 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11
3월의 질량/이승복 3월의 질량/이승복 우리는 그녀를 오후라고 불렀다. 파리 133km 오를레앙을 방금 지났을 게 분명했다. 아니면 못 미쳤거나, 그리 생각한 건 스치듯 지나간 표지판 때문이 아니다. 그 즈음에서 시작한 비 때문이었다. 아무튼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파리가 멀지 않다. 어두웠기에 짐작할 수 있는 것들 몇몇..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11
돼지국밥 한그릇/정이랑 돼지국밥 한그릇/정이랑 태어나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말아드리지 못했다 올해 칠순의 늙은 아버지와 마주 앉아 먹는 국밥 눈동자 한번 들여다보지 못하고 살았는데 할 말이 없다 "고기가 많네요, 아버지." 아직도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그릇으로 고기 건네고 "이것만 해도 많다, 너나 많이 먹어." 갔던..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11
나의 프리마켓/김혜순 나의 프리마켓/김혜순 뭐 굳이 사겠다는 사람은 없지만 좌판은 벌린다 새의 혀처럼 생긴 말랑한 침묵을 위한 열쇠 몇 개 두들기면 뭉개지는 종소리 몇 개 눈뜨면 슬며시 녹아내리는 풍경 몇 장 노래로 만든 관에 함께 묻을 수 있는 금간 얼굴 몇 장 그리고 애매성 광기의 전압을 높이는 예배당이여! 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11
하얀 밤 하얀 밤/정윤천 불이 난 집은 반드시 흥한다던 솜꽃 같은 위무의 말은 누가 지어낸 아름다운 미신이었을까요. ㅎ의 소식이 담긴 사발통문 곁으로 예전의 깻잎들이, 깻잎 닮은 봉투 한 닢씩 거두어 봅니다. 사거리에서도 가장 환한 자리에 일식집 간판을 걸었다는 ㅎ이, ㅅ(사장)이 되어 나타났던 것입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11
간고등어 간고등어/김성배 지역특산물을 먹어보자던 아내의 입맛에 부부(夫婦)처럼 포개진 두 마리를 얼른 냉장고에서 꺼내 신혼의 바다를 풀었다 하얀 천일염에 사랑을 절인 간잽이의 손 놀림이 기름 없이 바삭바삭 구워진다는 혼수품 후라이팬을 뒤집었다 폈다를 파도처럼 숨결을 놓은 등 푸른 꿀맛이 허기..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11
나눔은 행복입니다. 나눔은 행복입니다. 2010년 9월 9일에 두 곳 2010년 9월 10일에 한 곳, 노인정(경로당)을 찾아 갔습니다. 라면과 계란은 궁합이 잘 맞는 어르신들의 간식거리거든요. 작은 나눔도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 詩그리고詩/쉬어가는 글 2010.09.10
노랑붓꽃 / 나종영 노랑붓꽃 / 나종영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작은 풀이파리 만한 사랑 하나 받고 싶었을까 나는 상처가 되고 싶었네 노란 꽃잎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병든 몸이 뜨거워지고, 나는 사랑이 곧 상처임을 알았네 지난 봄 한철 햇살 아래 기다림에 몸부림치는 네 모습이 진정 내 모습임을 노랑붓꽃 피어 있는 물..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10
나뭇잎 뒤 / 권혁웅 나뭇잎 뒤 / 권혁웅 초여름 햇살의 공습을 막아내기 위해 나무가 잎을 내는 거라고 너는 말한다 나무의 陣地戰은 초록 그늘로 본체를 싸 바르는 것, 도무지 가당치 않다는 내 말에 너는 아무 관계 없다는 뜻의 그 얼토와 당토가 바로 폐위된 왕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그 나라의 빛은 잎새 뒤의 그늘이 자..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