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 고석종 이슬 / 고석종 덜커덩, 한 여자가 쇠저울에 던져진다 이름은 정이슬, 나이는 서른다섯 가량 주소는 불명이며 키는 161, 몸무게는 52킬로이다 시큼한 포르말린 냄새 흰 가운을 입은 부검의들이 생의 집행관보다 먼저 그녀의 주검을 수납한다 날카로운 메스 끝에 스스스, 아랫배의 찌든 시간이 끌려나온다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23
마음만 바쁜 요즘 마음만 바쁜 요즘 퍼붓듯 내린 빗속에 마음만 바쁜 요 며칠 명절 지내러 온 형제들은 다 제자리 찾아가고 제가 등단한 문학지 사화집에 보낼 모처럼 詩 몇편을 다듬고 있습니다~~~ ♣ 詩그리고詩/쉬어가는 글 2010.09.22
오래 닫아둔 창 / 신용목 오래 닫아둔 창 / 신용목 방도 때로는 무덤이어서 사람이 들어가 세월을 죽여 미라를 만든다 골목을 세워 혼자 누운 방 아침 해가 건너편 벽에 창문만 한 포스터를 붙여놓았다 환한 저 사각의 무늬를 건너 세상을 안내하겠다는 것인가 아이들 뛰는 소리 웃음소리 아득히 노는 소리 그러나 오로지 그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21
사람의 마을로 가는 길이 참 따뜻하다 / 박창기 사람의 마을로 가는 길이 참 따뜻하다 박창기 사람의 마을로 가는 길이 참 따뜻하다 마을이 적막을 끌어 덮는다 해도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으리 이 세상 어디를 가든 사랑이 아니고서야 길은 굳이 거기로 났을까 사람의 마을에서 만난 풀꽃은 모두 아름다웠다 사랑받는 여자가 예뻐지듯 정다운 눈으..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21
또 다른 고향/송문헌 또 다른 고향 - 폭설. 3 - 송 문 헌 어둠의 처마 끝에 눈발이 거칠다 소리소문없이 순임이네가 고향을 떠났던 밤처럼 신당동 중앙시장 채소전거리 어디쯤서였던가 왜장치는 얼금뱅이 아저씨를 대번에 알아본 것이, - 그날 난 그에게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그때 눈 덮인 신작로 등교 길에서 주운 다해진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21
느티, 검은 구멍/고진하 느티, 검은 구멍/고진하 수령(樹齡) 300년은 됨 직한 느티나무, 텅텅 튀는 농구공 대여섯 개쯤 들어갈 허리께에 난 저 검은 구멍에 개미들이 들락거린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왕국 하나쯤은 너끈히 건설할 수 있겠지. 다람쥐나 청설모가 한 뼘 꼬리를 낮추고 드나든다면, 동네 텃새들이 짹짹거리며 날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21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서정주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서정주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 마다 칠해져 온 곳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 많이 문..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21
기차/안도현 기차/안도현 삼례역에서 기차가 운다, 뽕뽕, 하고 운다, 우는 것은 기차인데 울음은 멀리까지 번지게하는 것은 철길이다, 늙은 철길이다 저 늙은 것의 등뼈를 타고 사과 궤짝과 포탄을 실어 나른 적 있다 허나, 발갛게 달아오른 기관실을 남쪽 바닷물에 처박고 식혀 보지 못했다 곡성이며 여수 따위 목..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21
사루비아 / 신현정 사루비아 / 신현정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에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현대시학' 2009년 11월호 투병 중 병상에서 쓴 유고시로 사루..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21
나무를 낳는 새 / 유하 나무를 낳는 새 / 유하 찌르레기 한 마리 날아와 나무에게 키스했을 때 나무는 새의 입 속에 산수유 열매를 넣어주었습니다 달콤한 과육의 시절이 끝나고 어느 날 허공을 날던 새는 최후의 추락을 맞이하였습니다 바람이, 새의 육신을 거두어 가는 동안 그의 몸 안에 남아 있던 산수유 씨앗들은 싹을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