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조명 / 최승헌 감성조명 / 최승헌 당신 몸은 어둡거나 밝은 적이 없어서 내가 은밀하게 드나들기에 좋군요 여기는 당신 몸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서 아주 편안해요 선명하다는 건 자신을 다 까발려서 내보이는 것이니까 신비함이 없지요 만약 당신이 차갑거나 뜨겁거나 한 가지 느낌으로만 내게 들어온다면 갑자기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6.06
주름살 / 이수산 주름살 / 이수산 아버지 늘 돋보기 끼고 신문을 보셨다 나도 매일 아버지처럼 매일 신문 밭에서 제주 해녀가 돌 틈에서 전복을 캐듯 무엇인가 캐려고 신문을 읽고 있다 왜 그렇게 심취해 읽으셨는지 무엇을 캐셨는지 이제야 알겠다 시집 <차향> 2010. 서정시학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느릅나무가 있는 카페 / 송종규 느릅나무가 있는 카페 / 송종규 저 의자는 오래 전 당신이 비워 둔 것이다 이 컵의 자국은 오래 전 당신이 찍은 얼룩이다 다소 느슨하게 돌아가는 벽시계는 오래 전 당신이 벗어둔 외투, 고무나무와 아레카 야자가 있는 창가에 우두커니 당신은 서 있다 바람이 불거나 해가 지는 것처럼 아주 일상적인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아줌마, 아내 / 복효근 아줌마, 아내 / 복효근 나 혼자 심심할 것 같다고 병실 바닥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한 봉다리 마늘을 가지고 와선 TV 보며 마늘을 까는 여자, 배울 만큼 배웠다는 여자가 선생까지 한다는 여자가 미간을 찌뿌리고 나가는 간호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뭐, 어때 하면서 마늘을 깐다 산중에 곰이 제 배설물 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과장님 먹을 쌀 / 류근삼 -과장님 먹을 쌀 / 류근삼 시골 버스 삼백리 길 덜커덩거리며 과장으로 승진한 아들네 집에 쌀 한 가마 입석버스에 실었것다. 읍내 근처만 와도 사람 북적거린다 뚱뚱한 할매 울 엄마 닮은 할매 커다란 엉덩이 쌀가마 위에 자리 삼아 앉았것다. <이놈우 할미 좀 보소 울 아들 과장님 목을 쌀가마이 우..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그 저녁 / 김형미 그 저녁 / 김형미 자귀나무 연자꽃 붉어가는 정육점 저녁마다 그 앞을 지나간다 갈고리에 걸린 시뻘건 갈비를 보면 오래 전 사내를 품었던 그때처럼 나도 모르게 내 옆구리를 더듬게 된다 그러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몸속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갈비뼈가 나를 슬프게 한다 잊혀진 것들을 부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벽오동나무 / 김형미 벽오동나무 / 김형미 그 집 마당에 두고 온 벽오동나무의 혼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어 초여름 이른 안개에 젖은 늙은 벽오동 한 평도 안 되는 어께에 기대어 한 삼 년쯤 묵어갔음 해 산 설고 물 설은 능가산 자락만큼 큰 잎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눈멀었음 해 흙벽집 옹이 많은 기둥처럼 깊이 골몰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탁목조에 대한 생각/ 전용직 탁목조에 대한 생각/ 전용직 어둠이 숨 헐떡이며 산을 오른다 숲은 아직도 졸음을 털지 못했는지 새 새끼 종알거림이 산을 울린다 단풍나무 갈참나무 숲을 지나 거기 나무등걸 가슴팍 탁 타닥 닥 닥 피나게 찍어대는 탁목조 한 마리 꽁지털 빠진 모습으로 부리 망가지도록 쪼더니 눈길 마주지차 피식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그늘꽃 / 유정이 그늘꽃 / 유정이 저 골몰한 것들 한 곳으로만 가는 것들 스무 살의 오월같이 타닥타닥, 피는 일에 골몰한 봄꽃들 저렇게 제 몸 피워본 날들 새삼스럽다 나는 키워지지 않은 아이 재배되지 않은 꽃이었다 지나는 봄비에 하르르 몸 지고 목 꺾였지만 아무도 내 벗겨진 아랫도리 덮어주지 않았다 꽃잎보다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선인장 꽃기린 / 유정이 선인장 꽃기린 / 유정이 꽃이란 꽃은 모두 스스로 쥐어짠 상처라는군 꽃이 웃고 있다고 믿는 건 오해라는군 가만히 보면 곧 울어버릴 것 같은 게 꽃의 얼굴이 아니냐구! 만개하는 울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서둘러 입을 닫느라 몸에 돋은 가시들 그 상처의 소리 들리네 누군가 남겨 놓고 간 쓰디쓴 서..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