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름/조두현 엄마 이름 '여보'도 '한별이 엄마'도 아니다 동창회 초청장에 또렷한 '김순애 귀하' 새롭게 느껴지는 엄마 이름 학창 시절 출석부에 당당히 한 자리 차지했을 '김순애' 참새 같은 친구들이 닳도록 부르고 불렀을 '김순애, 김순애' 엄마 등 뒤에서 가만히 불러본다 '김순애' 따뜻한 숨결처럼 .. 가슴으로 읽는 詩 2013.10.20
우체국을 지나며/문무학 우체국을 지나며 살아가며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가을날 우체국 근처 그쯤이면 좋겠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엔 우체국 앞만 한 곳 없다 우체통이 보이면 그냥 소식 궁금하고 써 놓은 편지 없어도 우표를 사고 싶다 그대가 그립다고, 그립다고, .. 가슴으로 읽는 詩 2013.10.20
은행나무/박형권 은행나무 사람 안 들기 시작한 방에 낙엽이 수북하다 나는 밥 할 줄 모르고, 낙엽 한 줌 쥐여 주면 햄버거 한 개 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나 낙엽 한 잎 잘 말려서 그녀에게 보내면 없는 나에게 시집도 온다는데 낙엽 주고 밥 달라고 하면 왜 뺨 맞나 낙엽 쓸어담아 은행 가서 낙엽통장 만들.. 가슴으로 읽는 詩 2013.10.20
가을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 이인구 가을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 이인구 구름 몇 점 입에 문 채로 푸른 하늘 등에 업고 바람처럼 시들거나 구겨지지 않는 노래 부르며 숲의 문 차례로 열어젖히고 끝 보이지 않는 깊은 산 속으로 타박타박 걸어들어가 마음의 어둠 검은 밤처럼 던져 버리고 우수수 쏟아질 듯 열린 하늘벌 .. 가슴으로 읽는 詩 2013.09.20
벌레보살/진순분 벌레보살 고맙습니다 주렁주렁 붉은 고추 토마토 알알이 영근 옥수수며 강낭콩 애호박 햇빛과 비를 내리어 열매를 맺어주시니 땅속에서 기름진 흙 일궈준 지렁이와 열매 키운 무당벌레와 꽃가루 나른 벌들 묵묵히 긴 날 수고한 보살들이 고맙습니다. 삼복에도 밭에 오면 매미 먼저 울어.. 가슴으로 읽는 詩 2013.09.14
생각 속에서/이진호 생각 속에서 여름방학을 기다리면서 시골을 생각한다. 연못에서 처음 본 물땅땅이 숲에서 울어 주던 쓰르라미 불을 달고 날아다니던 개똥벌레 올해도 날 알아보고 반가워할까. 산비탈에서 만난 도롱뇽 올해는 정말 놀라지 말아야지. 냇물에서 잡다 놓친 작은 물고기 올핸 얼마나 큰 놈으.. 가슴으로 읽는 詩 2013.08.14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 가슴으로 읽는 詩 2013.07.18
곰국/선안영 곰국 장작불에 끓여서 택배로 온 사골국물 몇 번씩 우려내느라 어머니 병 앓았을 분주한 시간의 뒤꼍에 우두커니 버려져서 상한 국물 버리는데 끌끌끌 혀를 차듯 하수도를 맴돌다 죄 빠져나간다 뼈 구멍 숭숭 뚫리도록 또 당신의 등골 뺀 밤 한 사발의 곰국이 젖이 되고 꽃이 되길 주문처.. 가슴으로 읽는 詩 2013.06.30
소사 가는 길, 잠시/신용묵 소사 가는 길, 잠시 시흥에서 소사 가는 길, 잠시 신호에 걸려 버스가 멈췄을 때 건너 다방 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얼굴 속에서 손톱을 다듬는, 앳된 여자 머리 위엔 기원이 있고 그 위엔 한 줄 비행기 지나간 흔적 햇살이 비듬처럼 내리는 오후, 차창에도 다방 풍경이 비쳤을 터이니 .. 가슴으로 읽는 詩 2013.06.30
우물물 井水(정수)/김윤안 우물물 井水(정수) 우물물은 천 길 천 길이라도 퍼 올리고 사람 마음은 한 치 한 치라도 알기 참 어렵다. 고드름은 진흙에 버려져도 한 번 씻자 도로 깨끗해지는데 나쁜 쇳덩어리는 큰 대장장이가 벼리나 천 번을 연마해도 끝내 부서진다. 井水雖千尋(정수수천심) 千尋猶可汲(천심유가급) .. 가슴으로 읽는 詩 2013.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