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일까,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신경림 무엇일까,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 무엇일까 저 아름다운 풍경 속에 들어가 숨어 있는 것들이. 학교 마당 플라타너스 가지 사이에 디딜방아 확 속에, 찬가게 마루 끝에 숨어서 짐짓 모른 체 외면하는 나를 빼꼼히 올려다보며 킬킬대고 웃는 것들이. 반들거리는 들쥐새끼처럼 눈을 빛내며 .. 가슴으로 읽는 詩 2013.01.01
우연히 읊다 偶詠(우영) 山翁與山禽(산옹여산금) 相宿一詹裏(상숙일첨리) 昨日渠先飛(작일거선비) 今朝後我起(금조후아기) 우연히 읊다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시다. 우리의 농촌 마을과 산골에는 옛날에도 지금에도 저런 마음씨를 지닌 분들이 여기저기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사람..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2.23
거지의 노래/김영석 거지의 노래 나는 거지라네 몸도 마음도 다 거지라네 천지의 밥을 빌어다가 다시 말하면 햇빛과 공기와 물과 낟알을 빌어다가 세상에서 보고 겪은 온갖 잡동사니를 빌어다가 마른 수수깡으로 성글게 엮듯 잠시 나를 지었다네 달이 뜨면 달빛이 새어 들고 마파람 하늬바람 거침없이 지나..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2.23
별 편지/한명순 별 편지 별들이 촘촘히 편지를 쓴다 넓고 까만 하늘 종이 위에… 문득 친구가 보고 싶은 날 몰래 나와 별 편지를 읽는다 눈짓으로만 마음으로만 속삭이는 별들의 편지… 그런 날은 풀벌레들도 극성이다 별 편지를 읽는 소리 요란하다 ―한명순(1952~ ) 그 많던 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요즘..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2.23
구부정 소나무/리진 구부정 소나무 숲의 먼 끝에 한 그루 외따로 구부정 소나무가 서 있다 로씨야땅에서 보기 드문 구부정 소나무가 서 있다 그 곁을 지날 때면 언제나 가만히 눈물을 머금는다 저도 몰래 주먹을 쥔다 가슴이 소리 없이 외친다 멀리서 아끼는 사랑이 얼마나 애틋한지 아느냐 길 떠난 아들을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2.23
당신은 스마트한가요/김남규 당신은 스마트한가요 1. 거리의 시위자들 상상력을 점령하고 최후의 독재가 죽음까지 독재해도 세상의 모든 일요일처럼 음 소거된 동영상 2. 갓 태어난 새끼까지 땅속에 밀어 넣고 서둘러 지켜낸 우리의 저녁 식사 검은 피 땅을 녹여가며 그래프를 꺾는다 3. 불의 고리* 뼈 부딪는 소리 바..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2.23
돌에/함민복 돌에 송덕문도 아름다운 시구절도 전원가든이란 간판도 묘비명도 부처님도 파지 말자 돌에는 세필 가랑비 바람의 획 육필의 눈보라 세월 친 청이끼 덧씌운 문장 없다 돌엔 부드러운 것들이 이미 써놓은 탄탄한 문장 가득하니 돌엔 돌은 읽기만 하고 뽀족한 쇠끝 대지 말자 ―함민복(1962~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2.23
친구의 죽음 哭劉主簿(곡유주부)/원중거 친구의 죽음 哭劉主簿(곡유주부) 인생은 한 번 피는 꽃 천지는 큰 나무다. 잠깐 피었다 도로 떨어지나니 억울할 것도 겁날 것도 없다. 人世一番花(인세일번화) 乾坤是大樹(건곤시대수) 乍開還乍零(사개환사령) 無寃亦無懼(무원역무구) ―원중거(元重擧·1719~1790) 조선 영·정조 시대의 학..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2.23
나는 늙으려고/조창환 나는 늙으려고 나는 늙으려고 이 세상 끝까지 왔나보다 북두칠성이 물가에 내려와 발을 적시는 호수, 적막하고 고즈넉한 물에 비친 달은 붉게 늙었다 저 괴물 같은 아름다운 달 뒤로 부옇게 흐린 빛은 오로라인가 이 궁벽한 모텔에서 아직 다하지 않은 참회의 말 생각하며 한밤을 깨어있..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2.23
새 연필을 깎으며/이혜영 새 연필을 깎으며 손 안에 느껴지는 나무의 곧은 힘 새 연필을 깎는다 한 뼘 길이가 몽당이 될 때까지 우리는 함께다 분수의 곱셈, 나눗셈 같이 풀고 신라, 고구려, 백제 조상님을 함께 만나자 밀림 울창한 아프리카는 내일 가고 천왕성 명왕성은 다음 날 가자 새 연필을 깎으면 가슴이 뛴..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