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詩 155

[2010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구름의 화법 / 하기정

[2010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구름의 화법 / 하기정 구름은 여태 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어 형상은 당신 머릿속에나 있지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물방울이 아니야, 보다 가볍지 당신의 어깨를 적실 수도 당신의 입가를 핥을 수도 있지 그러니 나를 구름이라 이름 짓는 건 아주 치명적이지 네가 ..

[2010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후가 달아나요 / 이미자

[2010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후가 달아나요 / 이미자 강바람이 불 때마다 프릴 달린 스커트 자락 출렁거려요 산은 어느새 태양의 목, 낚아채 오픈카에 태워요 그러자 쉿! 재빠르게 산 스커트 안 들여다봐요 더듬는 하늘 충혈 됐네요 파랗게 놀란 강 소매 걷어 철썩! 뺨을 때려요 얼얼해진 ..

[2010년 신춘한라문예 시 당선작] 장식장을 버리고 / 박찬

[2010년 신춘한라문예 시 당선작] 장식장을 버리고 / 박찬 장식장을 버렸습니다. 떨어져 덜컥이는 문짝을 청테이프로 길게 입막음 하고 동사무소에 들러 오천 원짜리 스티커를 사왔습니다. 저승길 노잣돈치곤 값싼 그 몸값이 안쓰러워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그와의 이별에 매달립니다. 모..

[2010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녀의 골반 / 석류화

[2010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녀의 골반 / 석류화 1 나비 꿈을 꾸고 엄마는 날 낳았다 흰 꿈, 엄마는 치마폭에 날 쓸어 담았다 커다란 모시나비, 손끝에 잡혔다가 분가루 묻어나갔다 날개 끝에 고인 몇 점 물방울무늬, 방문 밖으로 날았다 돌담에 피는 씀바귀꽃 그늘을 옮겨다녔다 나비 날개엔 ..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허氏의 구둣방 / 이미화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허氏의 구둣방 / 이미화 발 끝에 달을 달고 저녁 강을 건너고 있는 허氏 구름처럼 떠돌았으므로 그의 생은 한쪽만 유난히 닳은 구두처럼 삐뚜름하다 그의 구두처럼 다 허물어져가는 옥봉동 산 1번지 아파트에 조등처럼 별이 걸릴 때 저녁하늘은 가난한 마을의 착한 지붕..

[2010 국제신춘문예 시 당선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 / 박진규

[2010 국제신춘문예 시 당선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 / 박진규 달이 저 많은 사스레피나무 가는 가지마다 마른 솔잎들을 촘촘히 걸어놓았다 달빛인 양 지난 밤 바람에 우수수 쏟아진 그리움들 산책자들은 젖은 내면을 한 장씩 달빛에 태우며 만조처럼 차오른 심연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러면 이곳이 너..

[2010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제비꽃 향기 / 김은아

[2010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제비꽃 향기 / 김은아 생선뼈만 남은 개 밥그릇에 개미가 아우성이다 시간이 지나자, 삶의 살을 뼈만 남긴 채 말라가는 빈 밥그릇에서 시간을 붙잡고 보시를 하는 중이다 한 때 거친 바다를 헤엄쳐 푸른 꿈을 키웠을 너 어쩌자고 사람들 입 속까지 들어와 피와 살이 ..

[2010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팝나무에 비 내리면 / 황종권

[2010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팝나무에 비 내리면 / 황종권 당신은 육지를 떠나기 전이면 뒤뜰에 있는 이팝나무 아래로 불러내곤 했지요. 이팝나무 한 뼘 위를 회칼로 그으며, 그만큼 자라면 온다고 무슨 굳센 다짐처럼 말하곤 했지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팝나무 아래에서 키를 재어 보았는..

[2010 부일신춘문예 시 당선작]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 / 심명수

[2010 부일신춘문예 시 당선작]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 / 심명수 잘 못 꾼 꿈이 지워진 거예요 마음이 시끄럽네요 쮸릿, 쮸릿, 칫, 칫 물이 끓고 있나요? 머릿속을 지우개로 박박 지웠더니 보글보글 구름이 생겼어요 요리에 앞서 별표 3개라는 걸 잊지 마세요 너무 많이 문지르면 검게 비구름이 된다는..

[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른다고 하였다/ 권지현

[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른다고 하였다/ 권지현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북경공항 로비에서 삼백삼십 명의 여행자들은 여섯 시간째 발이 묶인 채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현지여행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행가방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떠들어대거나 서로 담배를 권했다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