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선언 / 문정희 꽃의 선언 문정희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의 성(性)을 사용할 것이며 국가에서 관리하거나 조상이 간섭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사상이 함부로 손을 넣지 못하게 할 것이며 누구를 계몽하거나 선전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정녕 아름답거나 착한 척도 하지 않을 것이며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폭설도시 / 문정희 폭설도시 문정희 폭설이 도시를 점령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첫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되었다 반짝이는 시간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발밑에서 새의 깃털 소리가 났다 하얀 손을 가진 이 통치자는 누구인가 그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내건 적도 없지만 역사상 어떤 만장일치로 세운 정부보다 빠르..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나의 아내 / 문정희 나의 아내 문정희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 환한 웃음으로 피어난 꽃 같은 아내 꼭 껴안고 자고 나면 나의 씨를 제 몸 속에 키워 자식을 낳아주는 아내 내가 돈을 벌어다 주면 밥을 지어주고 밖에서 일할 때나 술을 마실 때 내 방을 치워놓고 기다리는 아내 또 시를 쓸 때나 소파에서 신문..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치마 / 문정희 치마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머리 감는 여자 / 문정희 머리 감는 여자 문정희 풍성한 다산의 여자들이 초록의 밀림 속에서 죄 없이 천년의 대지가 되는 뽀뽈라로 가서 야자잎에 돌을 얹어 둥지 하나 틀고 나도 밤마다 쑥쑥 아이를 배고 해마다 쑥쑥 아이를 낳아야지 검은 하수구를 타고 콘돔과 감별당한 태아들과 들어내 버린 자궁들이 떼지어 떠내려 가는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아름다운 곳 / 문정희 아름다운 곳 문정희 봄이라고 해서 사실은 새로 난 것 한 가지도 없다 너디인가 깊고 먼 곳을 다녀온 모두가 낯잊은 작년 것들이다 우리가 날마다 작고 슬픈 밥솥에다 쌀을 씻어 헹구고 있는 사이 보아라, 죽어서 땅에 떨어진 저 가느다란 풀잎에 푸르고 생생한 기적이 돌아왔다 창백한 고목나무에도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남편 / 문정희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 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러브호텔 / 문정희 러브호텔/문정희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다 나는 그 호텔에 자주 드나든다 상대를 묻지 말기를 바란다 수시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내 몸 안에 교회가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에 들어가 기도한다 가끔 울 때도 있다 내 몸 안에 시인이 있다 늘 시를 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겨울 日記 / 문정희 겨울 日記 문정희 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 누워서 편히 지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 서로 서로 기대어 숲이 되어도 나는 무관해서 문 한번 열지 않고 반추동물처럼 죽음만 꺼내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먼 길 / 문정희 먼 길 / 문정희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처음 걷기를 배운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는 신이 있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뿐 새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또 무..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