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 마종기 메아리 / 마종기 작은 호수가 노래하는 거 너 들어봤니. 피곤한 마음은 그냥 더 잠자게 하고 새벽 숲의 잡풀처럼 귀 기울이면 진한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채 물이 노래하는 거 들어봤니? 긴 피리 소리 같기도 하고 첼로 소리인지 아코디언 소리인지. 멀리서 오는 밝고 얇은 소리에 새벽 안개가 천천히 일..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우화의 강 / 마종기 우화의 강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전화 / 마종기 전화 / 마종기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는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무엇에 쓰려고 시를 쓰나 / 이생진 무엇에 쓰려고 시를 쓰나 / 이생진 무엇에 쓰려고 시를 쓰나 모르겠다 삼십 년 사십 년을 해도 모르겠다 읽고 쓰고 읽고 논문에 학위에 상장을 받아도 모르겠다 세상에 이렇게 모를 수도 있나 그런데 남들은 내가 시를 아는 줄 안다 그들의 답을 피하기 위해 시는 구름이라고도 하고 시는 바람이라고도..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묵 상 / 천양희 묵 상 / 천양희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수없이 말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 수없이 걸어가고 버려서는 안될 것 수없이 버렸습니다 사랑 하나에도 목숨걸지 못하고 진실 하나에도 깃발 들지 못하고 아무 것도 내놓지 않는 세상 원망했습니다 혀끝으로 수없이 맹세하며 혀끝으로 수없이 배반하며 혀끝으로..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아버지의 죽음 / 김동호 아버지의 죽음 / 김동호 사진첩 속 사진이 퇴색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기억이 있다. 六.二五 전쟁, 一四후퇴때 빙판길 미끄러지며 미끄러지며 찾아간 첫 피난 마을 피난간 빈집, 안방 차지하고 쌀독이며 김치독이며 마구 허는 재미에 전쟁도 잠시 잊은 듯 마냥 흥겹기까지 한 피난민들 그 속에 우리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 속에 준비해 둔 다섯 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아버지의 유작 노트 중에서 / 허수경 아버지의 유작 노트 중에서 / 허수경 ...여행을 한다, 겨울 속으로 눈은 끝없이 내리고, 새는 후두둑..., 인적의 바퀴는 눈에 쓸려가고 우렁우렁... 雪 山이 대답하는 고요... 나는 발견한다... 대숲..., 너무 좋아서, 맨발의 아가처럼 연록의 저 천진, 천진은 애리다 ...며칠을 서성인다, 들어가보지 못하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아버지의 등 / 정철훈 아버지의 등 / 정철훈 만취한 아버지가 자정 넘어 휘적휘적 들어서던 소리 마루바닥에 쿵, 하고 고목 쓰러지던 소리 숨을 죽이다 한참만에 나가보았다 거기 세상을 등지듯 모로 눕힌 아버지의 검은 등짝 아버지는 왜 모든 꿈을 꺼버렸을까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고 삼..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