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밥그릇 / 안효희 아버지의 밥그릇 / 안효희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산양 / 이건청 산양 / 이건청 아버지의 등뒤에 벼랑이 보인다. 아니, 아버지는 안 보이고 벼랑만 보인다. 요즘엔 선연히 보인다. 옛날, 나는 아버지가 산인 줄 알았다. 차령산맥이거나 낭림산맥인 줄 알았다. 장대한 능선들 모두가 아버지인 줄 알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푸른 이끼를 스쳐간 그 산의 물이 흐르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새벽의 시 / 정호승 새벽의 시 / 정호승 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뭇잎이 나무의 눈물인 것을 새똥이 새들의 눈물인 것을 어머니가 인간의 눈물인 것을 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무들의 뿌리가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새들이 우리의 더러운 지붕 위에 날아와 똥을 눈다는 것이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길바닥 / 정호승 길 바 닥 / 정호승 내 집을 떠나 길바닥에 나앉은 것은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던 종다리가 잠시 길바닥에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내 집을 떠나 길바닥에 나앉은 것은 봄바람에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가 길바닥에 내려앉아 드디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너를 떠나 기어이 길바닥에 나앉은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나무들의 결혼식 / 정호승 나무들의 결혼식 / 정호승 내 한평생 버리고 싶지 않은 소원이 있다면 나무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낭랑하게 축시 한번 낭송해보는 일이다 내 한평생 끝끝내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우수가 지난 나무들의 결혼식 날 몰래 보름달이 떠올라 밤새도록 나무들의 첫날밤을 엿보는 일이다 그리하여 내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삶의 향기] 추색 [삶의 향기] 추색 하루가 다르게 날이 차가워지고 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이 지난 지 한 주, 입동 또한 이레 앞에 있다. 공기가 차가워짐을 살결로도 실감하는 때라 그런지 예부터 시를 짓는 이들은 이즈음의 시간에 아주 민감했던 것 같다. 중국 진나라의 장한은 자기 고향의 명물인 순챗.. 수필(신문칼럼) 2010.01.14
[삶의 향기] 을순네 주막 [삶의 향기] 을순네 주막 막걸리를 빚어 파티를 했다. ‘막걸리를 어떻게 집에서 만드느냐’는 남편 말에 오기가 나서 해보았더니 대성공.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독에 불에 달군 숯과 태운 신문지를 넣어 소독한 후, 누룩과 되게 지은 밥의 밥알을 알알이 털면서 잘 섞은 다음 끓여 식힌 물을 붓.. 수필(신문칼럼) 2010.01.14
동천(冬天)’ - 서정주 (1915~2000) 동천(冬天)’ - 서정주 (1915~2000)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남긴 시 천여 편 편편이 우리네 삶과 모국어의 숨통인데도 서정주 절창은 이렇듯 동지섣달 추위와 긴긴 밤의.. 詩가 있는 아침 2010.01.14
그녀에게 채이다(?) [우리말 바루기] 그녀에게 채이다(?) [중앙일보] 연애만 시작했다 하면 얼굴 보기 힘든 친구. 이 친구가 오랜만에 먼저 만나자고 연락하고는 우울한 얼굴로 약속 장소에 앉아 있다면, 그 다음 나올 말은 짐작이 가능하다. 바로 “나 엊그제 채였어”. 위에서와 같이 남녀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관계가 끊.. 수필(신문칼럼) 2010.01.14
울그락불그락(?) [우리말 바루기] 울그락불그락(?) [중앙일보] “그의 변명을 듣고 난 아내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했다.” “면접장에서 면접위원의 사소한 말에 자존심이 상해 울그락불그락 표정이 바뀌고 말 또한 매우 불손해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예문의 ‘울그락불그락’ ‘울그락불그락하다’는 사전에 없는 .. 수필(신문칼럼) 2010.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