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동물 이야기 6 / 권혁웅 상상동물 이야기 6 / 권혁웅 ― 늑대인간 사람들은 세 가지 방식으로 늑대인간이 된다 양변기 위에서 목을 빼고 울부짖거나 그녀의 옷 속에 함부로 스며들고 싶은 자들 그리고 급여일을 기다리는 이들이 그렇다 첫 번째 사람들은 오래 올라앉아 울다가 결국 피를 보고야 만다 양변기 가득 떠오르는 붉..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8
목련사원·1 / 조정인 목련사원·1 / 조정인 저 꽃그늘로 가면 백발이 성성하리라 이내 하얀 운구가 나가리라 목련 필 때면 연립주택 3층에 사는 나는, 앞집 또는 그 너머, 먼발치 안마당에 들인 목련 흰 탑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저절로 성지를 향해 등뼈를 곧추세우는 목련교도가 된다 다 이루었다,* 허공중에 아른아른 드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8
보라, 감자꽃 / 박성우 보라, 감자꽃 / 박성우 자주 보라 자주 보라 자주 감자꽃 피어 있다 일 갈 적에도 마을회관 놀러 갈 적에도 문 안 잠그고 다니는 니 어미 누가, 자식 놈 흉이라도 볼까봐 끼니 때 돌아오면 대문 꼭꼭 걸어 잠그고 찬밥에 물 말아 훌훌 넘기는 칠순에 닿은 니 홀어미나 자주 보라 자주 보라, 자주 감자꽃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8
조팝꽃 외 2편 / 김산옥 조팝꽃 외 2편 / 김산옥 꿀벌이 조팝꽃에 앉을 때 꿀벌은 자기 몸이 크다는 걸 안다 벌어질 크기도 깊이도 갖지 못한 조팝꽃 앞에서 떨림은 꿀벌의 몫이다 조팝꽃이 들인 방이 하도 작고 낮아 앉는 순간 꿀벌은 조팝꽃에게 너무 가까이 가고 만다 뒤척이기에도 조심스러운 곳 조팝꽃에 앉기 위해 날개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8
신부 / 오남구 신부 / 오남구 모니터에 신부가 흔들리고 있다 작은 딸 아이가 디지털로 담아왔다 잠이 안 오는 밤 큰 딸 아이가 사뿐히 걸어와 앉아 있다 어데서 나타났을까, 저 신부 딸아이는 없어지고 아주 낯이 설게 신부가 흔들리고 있다 딸과 낯선 신부 사이에 딸이 없어진 깝데시만 홀로 남은 나 흔들리며 모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8
통조림 / 마경덕 통조림 / 마경덕 밀봉된 바다, 무게 400g. 꽁치의 짭조롬한 눈물이 캔에 담겨있다. 천사백 원을 지불하면 원터치로 열리는 진공의 바다, 같은 용량의 인스턴트 바다들이 마트 진열대에 쌓여있다. 제발 저를 당겨주세요. 고리는 밑바닥에 바짝 들러붙었다. 누가 안전핀을 뽑듯 저 고리를 당겨준다면… 뚜..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8
산수유 아래서 징소리를 외 1편 / 김길나 산수유 아래서 징소리를 외 1편 / 김길나 그녀의 맨발을 만져보고 싶었으나 그녀는 일찍이 땅 속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묻힌 흙에서 빠끔히 떡잎이 눈 뜨고 떡잎에 숨은 길 한 가닥이 불쑥 일어나 줄기는 허공을 주욱 찢어 올리고 가지들은 또 낭창낭창 허공을 건드리고 허(虛)를 찔린 허공이 여기저기..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8
고등어의 골목 / 이종진 고등어의 골목 / 이종진 저녁 찬거리는 고등어였다. 살아온 날 만큼이나 무뎌진 식칼이 고등어의 푸른 등줄기를 몇 차례 내려치고 토막토막 나면서 오븐렌지 속에 들어가자 고등어는 결국 바다에서의 푸른 생을 끝냈다. 한때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리 식솔들을 이끌고 바다의 이 골목 저 골목으로..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8
나무의 기억력 / 이정란 나무의 기억력 / 이정란 책장에 온갖 책을 넣고 긴 세월을 함께 지냈다 층층이 올린 짐을 잘 버텨주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책장이 내쉬는 나무의 숨소리를 들었다 조용한 그 소리는 깊은 산 속에서 빗소리와 햇빛에 감응하고 절망을 글썽이던 잎과 줄기의 기억에 가 닿게 하였다 결 사이에 압축되어 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8
떡 / 이은봉 떡 / 이은봉 오늘밤 나, 냅다 떡, 되어 버렸다 떡, 하니 무릎을 치는 순간 한 손에 떡, 시루떡을 들고 입 딱딱 벌려대고 떡떡 떼어먹는 한 사내의 떡진 얼굴 눈망울 속으로 스쳐 지나간다 저게 누구지? 떡에 취해 떡 되어 버린 나? 내 속의 또 다른 나? 실은 그도 남이지 남몰래 나와 은근슬쩍 거래를 하며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