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一家)’ - 문태준(1970 ~ ) 일가(一家)’ - 문태준(1970 ~ ) 귀뚜라미 한 마리가 내 방에 찾아왔네. 사실은 내가 귀뚜라미를 불러들였지. 과일이 썩으면서 벌레를 불러들이듯이.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어제보다 훨씬 커졌지. 내 이가 다 시릴 정도였으니. 새벽녘 한참을 울적엔 서로에게 마치 엉성하게 쌓인 돌담이라도 되어 너도 나..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가을바람’-허만하(1932~ ) 가을바람’-허만하(1932~ ) 넘쳐 흘러내리는 시원한 매미 울음소리와 더위에 지친 옥수수 잎사귀의 와삭거림 그 사이 고추잠자리 날개에 주황색 묻어나는 늦더위와 코발트블루 해맑은 높이에서 사라지는 눈부심 그 사이 황금색 물결 넘실거리는 들녘 끝자락과 논두렁 억새 서너 포기의 가녀린 몸짓 그 ..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죽 한 사발’-박규리(1960~) 죽 한 사발’-박규리(1960~) 나도 언제쯤이면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다가 그대 상처 깊은 그곳까지 온몸으로 스밀 죽, 한 사발 되랴 실망, 좌절, 배신, 그리고 실연 등등에 자포자기, 몇 날 며칠 식음 전폐한 적 있었다. 술만 마셔가며 속 망가뜨린 적 있었다. 그래도 살아보자며 죽 사발 앞에..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당신은 상추쌈을 무척 좋아 하나요’-유용주(1960~ ) 당신은 상추쌈을 무척 좋아 하나요’-유용주(1960~ ) 보약을 먹어도 시원찮을 여름, 나무와 시멘트와 온갖 잡동사니 먼지에 땀 쌈장을 만들어 볼이 터지도록 눈을 뒤집어 까며 시어머니, 삶이라는 시어머니 앞에서 훌러덩 치마 깔고 퍼질러 앉아 불경스럽게 불경스럽게…… 언젠가 내 너의 머리카락을 ..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때’ 중-김광규(1941~ ) 때’ 중-김광규(1941~ ) 앞산의 검푸른 숲이 짙은 숨결 뿜어내고 대추나무 우듬지에 한두 개 누르스름한 이파리 생겨날 때 광복절이 어느새 지나가고 며칠 안 남은 여름방학을 아이들이 아쉬워할 때 한낮의 여치 노래 소리보다 저녁의 귀뚜라미 울음소리 더욱 커질 때 가을은 이미 곁에 와 있다 여름이..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구절초 시편’-박기섭(1954∼ ) 구절초 시편’-박기섭(1954∼ ) 찻물을 올려놓고 가을 소식 듣습니다 살다 보면 웬만큼은 떫은 물이 든다지만 먼 그대 생각에 온통 짓물러 터진 앞섶 못다 여민 앞섶에도 한 사나흘 비는 오고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허기를 버리는 강 내 몸은 그 강가 돌밭 잔돌로나 앉습니다 두어 평 꽃밭마저 차마 가꾸..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저녁에’-김종태(1946∼ ) 저녁에’-김종태(1946∼ ) 우리 마음 어두운 저녁하늘에 불어가는 바람이게 해 주소서. 우리 몸 어두운 저녁하늘 아래 서 있는 나무이게 해 주소서. 아니면 우리의 삶 저녁 불빛 속에 기다리는 아이들의 기쁨이게 해 주소서. 하늘 그림자 땅 위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게 어둠. 그런 저녁이 오면 외로움도 ..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여름날-마천에서’ -신경림(1935~ ) 여름날-마천에서’ -신경림(1935~ ) 버스에 앉아 잠시 조는 사이 소나기 한줄기 지났나보다 차가 갑자기 불은 물이 무서워 머뭇거리는 동구 밖 허연 허벅지를 내놓은 젊은 아낙 철벙대며 물을 건너고 산뜻하게 머리를 감은 버드나무가 비릿한 살냄새를 풍기고 있다 말복, 더위도 이제 끝물. 산뜻한 나무 .. 詩가 있는 아침 2009.12.02
그리움’-박건한(1942∼ ) 그리움’-박건한(1942∼ ) 빈 곳을 채우는 바람처럼 그대 소리도 없이 내 마음 빈 곳에 들어앉아 나뭇잎 흔들리듯 나를 부들부들 떨게 하고 있나니.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아니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어둠처럼 그대 소리도 없이 내 마음 빈 곳에 들어앉아 수많은 밤을 잠 못 이루게 나를 뒤척이고 있나.. 詩가 있는 아침 2009.12.02
백담사 2’-조병화(1921~2003) 백담사 2’-조병화(1921~2003) 밤이 깊어지니 별들이 하늘에 내려와 목욕을 하더라 하늘은 너무나 넓어서 물장구를 치는 애기 별도 있더라 만해도 별이 되어 백담사도 시도 벗어 던지고 하늘로 목욕을 하러 떠났더라 멀리 한양에서 찾아온 이들, 아랑곳없이. 깊은 밤 백담 계곡 걷자니 별이 물처럼 흐르며.. 詩가 있는 아침 2009.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