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돌 던지다’-윤정란(1952~) 세상에 돌 던지다’-윤정란(1952~) 애완용 개가 사람보다 사랑을 받는다고 문 안을 엿보다가 흩어지는 한숨들 눈 한번 마주치지 않는 세상에 돌 던지다 아비라고 당당하게 큰소리칠 수 없고 남자라고 무작정 들이밀 수가 없어서 언제나 뒤로 밀리는 삼식(三食) 놈의 회환을 속수무책 세월에 햇살도 돌아..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직녀에게’- 문병란(1935~ ) 직녀에게’- 문병란(1935~ )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처서(處暑)’-홍사성(1951- ) 처서(處暑)’-홍사성(1951- ) 기승을 부리던 노염(老炎)도 한풀 꺾였다 여름내 날뛰던 모기는 턱이 빠졌다 흰 구름 끊어진 곳마다 높아진 푸른 산 먼 길 나그네 또 한 구비 넘어간다 따가운 햇살 좀 더 아쉬운 논밭 곡식과 과수원 과실들에겐 미안하지만 이제 릴케의 ‘위대했던 여름’과는 작별을 고해..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나는 천 줄기 바람’- 인디언 전래 시 중에서 나는 천 줄기 바람’- 인디언 전래 시 중에서 내 무덤 앞에 서지 마세요 풀도 깎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자고 있지 않아요 나는 불어대는 천 개의 바람입니다 나는 흰 눈 위 반짝이는 광채입니다 나는 곡식을 여물게 하는 햇볕입니다 나는 당신의 고요한 아침에 내리는 가을비입..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민중의 소리’-프리드리히 횔더린(1770~1843) 민중의 소리’-프리드리히 횔더린(1770~1843) 민중의 소리는 하늘의 소리라고 젊었을 때 느꼈던 순수한 그 마음 지금도 마찬가지 내 생각이 어떻든 들끓는 시대의 흐름은. 지금도 그 소리 듣고 싶다 그 거센 소리에 내 마음 힘찬 고동 느끼기 위해 비록 내 궤도가 아닐지라도 그것은 바다로 나가는 궤도이..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일가(一家)’ - 문태준(1970 ~ ) 일가(一家)’ - 문태준(1970 ~ ) 귀뚜라미 한 마리가 내 방에 찾아왔네. 사실은 내가 귀뚜라미를 불러들였지. 과일이 썩으면서 벌레를 불러들이듯이.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어제보다 훨씬 커졌지. 내 이가 다 시릴 정도였으니. 새벽녘 한참을 울적엔 서로에게 마치 엉성하게 쌓인 돌담이라도 되어 너도 나..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가을바람’-허만하(1932~ ) 가을바람’-허만하(1932~ ) 넘쳐 흘러내리는 시원한 매미 울음소리와 더위에 지친 옥수수 잎사귀의 와삭거림 그 사이 고추잠자리 날개에 주황색 묻어나는 늦더위와 코발트블루 해맑은 높이에서 사라지는 눈부심 그 사이 황금색 물결 넘실거리는 들녘 끝자락과 논두렁 억새 서너 포기의 가녀린 몸짓 그 ..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죽 한 사발’-박규리(1960~) 죽 한 사발’-박규리(1960~) 나도 언제쯤이면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다가 그대 상처 깊은 그곳까지 온몸으로 스밀 죽, 한 사발 되랴 실망, 좌절, 배신, 그리고 실연 등등에 자포자기, 몇 날 며칠 식음 전폐한 적 있었다. 술만 마셔가며 속 망가뜨린 적 있었다. 그래도 살아보자며 죽 사발 앞에..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당신은 상추쌈을 무척 좋아 하나요’-유용주(1960~ ) 당신은 상추쌈을 무척 좋아 하나요’-유용주(1960~ ) 보약을 먹어도 시원찮을 여름, 나무와 시멘트와 온갖 잡동사니 먼지에 땀 쌈장을 만들어 볼이 터지도록 눈을 뒤집어 까며 시어머니, 삶이라는 시어머니 앞에서 훌러덩 치마 깔고 퍼질러 앉아 불경스럽게 불경스럽게…… 언젠가 내 너의 머리카락을 ..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
때’ 중-김광규(1941~ ) 때’ 중-김광규(1941~ ) 앞산의 검푸른 숲이 짙은 숨결 뿜어내고 대추나무 우듬지에 한두 개 누르스름한 이파리 생겨날 때 광복절이 어느새 지나가고 며칠 안 남은 여름방학을 아이들이 아쉬워할 때 한낮의 여치 노래 소리보다 저녁의 귀뚜라미 울음소리 더욱 커질 때 가을은 이미 곁에 와 있다 여름이.. 詩가 있는 아침 2009.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