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식사법 / 이종섶 바람의 식사법 / 이종섶 바람은 흔들리는 것들만 먹고 산다 흔들리지 않으면 죽은 것이라는 감별법에 따라 무엇을 만나든 먼저 흔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끼니때마다 바람의 식탁을 차려야하는 나무는 잎사귀의 흔들림까지 바쳐야 하는 삶이 괴로워 바람도 불지 않고 흔들림도 없는 어두운 땅속에서 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6.06
매화 분합 여는 마음 / 서안나 매화 분합 여는 마음 / 서안나 당신이 북쪽이라면 나는 북쪽을 향해 처음 눈을 뜬 누룩뱀 북쪽으로 돌아앉아 참빗으로 머리 빗어 내리면 연서를 쓰던 손가락이 쏟아진다 가고, 오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 버들눈썹 그리고 빈 배처럼 흔들릴거라 방문 닫아걸고 더운 피 식히며 남은 꽃이나 피우는 늙은 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6.06
감성조명 / 최승헌 감성조명 / 최승헌 당신 몸은 어둡거나 밝은 적이 없어서 내가 은밀하게 드나들기에 좋군요 여기는 당신 몸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서 아주 편안해요 선명하다는 건 자신을 다 까발려서 내보이는 것이니까 신비함이 없지요 만약 당신이 차갑거나 뜨겁거나 한 가지 느낌으로만 내게 들어온다면 갑자기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6.06
주름살 / 이수산 주름살 / 이수산 아버지 늘 돋보기 끼고 신문을 보셨다 나도 매일 아버지처럼 매일 신문 밭에서 제주 해녀가 돌 틈에서 전복을 캐듯 무엇인가 캐려고 신문을 읽고 있다 왜 그렇게 심취해 읽으셨는지 무엇을 캐셨는지 이제야 알겠다 시집 <차향> 2010. 서정시학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느릅나무가 있는 카페 / 송종규 느릅나무가 있는 카페 / 송종규 저 의자는 오래 전 당신이 비워 둔 것이다 이 컵의 자국은 오래 전 당신이 찍은 얼룩이다 다소 느슨하게 돌아가는 벽시계는 오래 전 당신이 벗어둔 외투, 고무나무와 아레카 야자가 있는 창가에 우두커니 당신은 서 있다 바람이 불거나 해가 지는 것처럼 아주 일상적인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아줌마, 아내 / 복효근 아줌마, 아내 / 복효근 나 혼자 심심할 것 같다고 병실 바닥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한 봉다리 마늘을 가지고 와선 TV 보며 마늘을 까는 여자, 배울 만큼 배웠다는 여자가 선생까지 한다는 여자가 미간을 찌뿌리고 나가는 간호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뭐, 어때 하면서 마늘을 깐다 산중에 곰이 제 배설물 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과장님 먹을 쌀 / 류근삼 -과장님 먹을 쌀 / 류근삼 시골 버스 삼백리 길 덜커덩거리며 과장으로 승진한 아들네 집에 쌀 한 가마 입석버스에 실었것다. 읍내 근처만 와도 사람 북적거린다 뚱뚱한 할매 울 엄마 닮은 할매 커다란 엉덩이 쌀가마 위에 자리 삼아 앉았것다. <이놈우 할미 좀 보소 울 아들 과장님 목을 쌀가마이 우..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그 저녁 / 김형미 그 저녁 / 김형미 자귀나무 연자꽃 붉어가는 정육점 저녁마다 그 앞을 지나간다 갈고리에 걸린 시뻘건 갈비를 보면 오래 전 사내를 품었던 그때처럼 나도 모르게 내 옆구리를 더듬게 된다 그러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몸속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갈비뼈가 나를 슬프게 한다 잊혀진 것들을 부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벽오동나무 / 김형미 벽오동나무 / 김형미 그 집 마당에 두고 온 벽오동나무의 혼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어 초여름 이른 안개에 젖은 늙은 벽오동 한 평도 안 되는 어께에 기대어 한 삼 년쯤 묵어갔음 해 산 설고 물 설은 능가산 자락만큼 큰 잎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눈멀었음 해 흙벽집 옹이 많은 기둥처럼 깊이 골몰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
탁목조에 대한 생각/ 전용직 탁목조에 대한 생각/ 전용직 어둠이 숨 헐떡이며 산을 오른다 숲은 아직도 졸음을 털지 못했는지 새 새끼 종알거림이 산을 울린다 단풍나무 갈참나무 숲을 지나 거기 나무등걸 가슴팍 탁 타닥 닥 닥 피나게 찍어대는 탁목조 한 마리 꽁지털 빠진 모습으로 부리 망가지도록 쪼더니 눈길 마주지차 피식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