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 이윤설 풀밭 위의 식사 / 이윤설 런닝셔츠 목살이 싯붉은 사장이 삼겹살을 올렸다 불판은 비좁고 우리는 잔디에 엉덩이를 찔려 움찔움찔 젓가락을 들었다 놓는 동안 노을에 잔뜩 들러붙은 겹겹의 구름이 유원지 놀이터 너머로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었다. 자 많이들 들자구, 고기는 충분하니까, 아버지처럼 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재테크 / 안도현 재테크 / 안도현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바람이 이파리를 흔든 게 아니었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할미꽃 / 유홍준 할미꽃 / 유홍준 안감이 꼭 저런 옷이 있었다 안감이 꼭 저렇게 붉은 옷만을 즐겨 입던 사람이 있었다 일흔일곱 살 죽산댁이었다 우리 할머니였다 돌아가신 지 꼭 십 년 됐다 할머니 무덤가에 앉아 바라보는 앞산마루 바라보며 생각해보는...... 봄날의 안감은 또 얼마나 따뜻한 것이냐 봄날의, 이 무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덫 / 박이화 덫 / 박이화 자고 일어나니 정원 한 구석에 새의 깃털이 비명처럼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아마도 살찐 비둘기 한 마리 도둑고양이의 기습을 받았을 터이다 밥이 덫이 되는 현장에서 날개는 더 이상 날개가 되어주지 못한 채 도리어 적의 커다란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미루어 보아 새는 한움큼의 깃털을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물 위에 물 아래 / 최승호 물 위에 물 아래 / 최승호 관광객들이 잔잔한 호수를 건너갈 때 水夫는 시체를 건지려 호수 밑바닥으로 내려가 호수 밑바닥에 소리 없이 점점 불어나는 배때기가 뚱뚱해진 쓰레기들의 엄청난 무덤을, 버려진 태아와 애벌레와 더러는 고양이도 개도 반죽된 개흙투성이 흙탕물 속에 신발짝, 깨진 플라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위험한 숲 / 김영식 위험한 숲 / 김영식 푸르르, 풋풋 산모룽일 돌아 나오는 거친 말굽소리가 눈두덩을 잡아당긴다 청미래덤불 지나 느릅나무 그늘 지나 푸른 갈기 휘날리며 헐레벌떡 숨을 턱에 달고 뛰어오는 여자 편자처럼 굽은 팔은 연신 허공을 찌르고 두 개의 봉우릴 거침없이 출렁이며 달려오는 저 야생의, 사나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조립로봇 / 변종태 조립로봇 / 변종태 파아란 억새풀숲에서 메뚜기가 교미하는 사진을 보고 있다. 손가락이 베일 듯 날선 억새 이파리에 열 다섯 처녀애 핏줄처럼 파란 바람 한 날 지나가고 꼼짝 않고 대사(大事)를 치르는 메뚜기 한 쌍, 그윽한 꿈 속에 잠시 취할 무렵 렌즈에 걸려 고정된 채 끌려온 한 쌍의 메뚜기 네 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14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작 - 4월 / 정영애 4월 / 정영애 사랑을 한 적 있었네 수세기 전에 일어났던 연애가 부활되었네 꽃이 지듯 나를 버릴 결심을 그때 했네 모자란 나이를 이어가며 서둘러 늙고 싶었네 사랑은 황폐했지만 죄 짓는 스무 살은 아름다웠네 자주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곤 했었네 활활 불 지르고 싶었네 나를 엎지르고 .. 신춘문예 당선詩 2010.02.02
토란잎 / 송찬호 토란잎 / 송찬호 나는, 또르르르……물방울이 굴러가 모이는 토란잎 한가운데, 물방울 마을에 산다 마을 뒤로는 달팽이 기도원으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길이 있고 마을 동남쪽 해뜨는 곳 토란잎 끝에 청개구리 청소년수련원의 번지점프 도약대가 있다 토란잎은 비바람에 뒤집혀진 우산을 닮았다 그래..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법정의 <인연 이야기>중에서 우리가 산 속으로 들어가 수도하는 것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사람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우리가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그들과 관계를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그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 법정의 <인연 이야기>중에서 ♣ 詩그리고詩/쉬어가는 글 2010.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