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를 읽다 / 김영식 전자레인지를 읽다 / 김영식 사각의 불가사의다 저건, 태양의 흑점 같은 타이머를 돌리면 불볕 같은 사막이 시작된다 대상들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낙오한 낙타처럼 조기 한 마리 제 그림자를 깔고 누워 헉헉거린다 사방이 감옥인 이 절해고도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별도 뜨지 않는다 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공기는 내 사랑 / 정진규 공기는 내 사랑 / 정진규 감자 껍질을 벗겨봐 특히 자주감자 껍질을 벗겨봐 감자의 살이 금방 보랏빛으로 멍드는 걸 보신 적 있지 속살에 공기가 닿으면 무슨 화학 변화가 아니라 공기의 속살이 보랏빛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되실 거야 감자가 온몸으로 가르쳐주지 공기는 늘 온 몸이 멍들어 있다는 걸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2007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수상작 / 불혹의 집 / 전영관 2007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수상작 불혹의 집 / 전영관 늦도록 야근이라도 했을까 두런두런 손 씻는 버드나무 야윈 팔 사이로 고단한 새벽만 우련하다 해쓱하게 마른버짐 핀 얼굴로 산은 종아리까지 발 담근 채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갈대들의 연두 빛 걸음걸이를 헤아리는 중인데 청태 자욱한 자.. 신춘문예 당선詩 2010.02.02
허물을 벗는다 / 최규철 허물을 벗는다 / 최규철 머릿속이 헝클어져 질근질근 아플 때는 머리를 감고 빗질을 한다 빗살 사이에서 뽑힌 실낱같은 세월이 잠시 흰 머리카락 끝에 매달렸다가 바람에 날려간다 손톱 발톱을 깎고 머리끝에서 손끝 발끝까지 몸의 구석구석 다듬고 추스른다 평생토록 이렇게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자귀나무 그 집 / 손순미 자귀나무 그 집 / 손순미 우리는 염소처럼 집 주위를 맴돌았다 넓은 마당에 별 같은 꽃들이 돋아있고 텃밭의 야채는 힘껏 솟아 있었다 주인은 온데간데 없고 집 앞 자귀나무 가지에 <집 팝니다> 푯말만 늘어지게 걸어놓았다 졸지에 부동산이 되어버린 자귀나무 우리는 자귀나무 처마 밑에서 주인..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달빛을 재는 체중계 / 심인숙 달빛을 재는 체중계 / 심인숙 당신이 가고 체중계를 베란다로 옮겨놓았습니다 적막강산이 되자 달이 찾아왔습니다. 맨발로 내려온 달이 체중계를 딛고 섭니다 모서리까지 한가득 올려집니다 체중계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바람을 타고 체중계 속을 달이 미끄러집니다 적막도 함께 밀려납니다 잃어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붉은 염전 / 김평엽 붉은 염전 / 김평엽 내게도 인생의 도면이 있었다 갱지 같은 마누라와 방구석에 누워 씨감자 심듯 꿈을 심고 간도 맞추며 살고 싶었다 바닥에 엎디어 넙치처럼 뒹굴며 아들 딸 낳고 싶었는데 돌아다보면 염전 하나 일구었을 뿐 성혼선언문 없이 산 게 문제다 선녀처럼 그녀를 믿은 게 문제다 정화수에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제9회 시흥문학상 시부문 금상 -누이가 오래 된 집으로 걸어온다 / 김영호 제9회 시흥문학상 시부분 금상 누이가 오래 된 집으로 걸어온다 / 김영호 1.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장맛비에 젖는다 세족식처럼 길이 씻긴다 가로등 불빛이 울음을 그친 눈빛 같다 실직한지 오래인 아버지 우중충 젖은 벽지에 한숨이 머리를 박는다 책가방이 흠뻑 젖어있다 2. 몇 시.. 신춘문예 당선詩 2010.02.02
제9회 시흥문학상 동상 - 소래에서 이별하다 / 이은영 소래에서 이별하다 / 이은영 버려진 소금 부대를 베고 하릴없이 누워 떠나간 사랑을 생각한다 덤불 가시 같은 햇살을 뭉쳐 녹슨 철길을 닦던 하루가 쭈그리고 앉아 운다 날은 저물어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축축한 바람이 분다 비린내 풍기며 멀리까지 나갔던 바다가 돌아와 출렁거리고 고기비늘처럼 .. 신춘문예 당선詩 2010.02.02
연 / 오세영 연 / 오세영 위로 위로 오르고자 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 바람을 타야한다 그러나 새처럼, 벌처럼, 나비처럼 지상으로 돌아오길 원치 않는다면 항상 끈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 양력과 인력이 주는 긴장과 화해 그 끈을 잃고 위로 위로 바람을 타고 오른 것들의 행방을 나는 모른다 다만 볼 수 있었던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