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 윤오영 염소 / 윤오영 어린 염소 세 마리가 달달거리며 보도 위로 주인을 따라간다. 염소는 다리가 짧다. 주인이 느릿느릿 놀 양으로 쇠걸음을 걸으면 염소는 종종걸음으로 빨리 따라가야 한다. 두 마리는 긴 줄로 목을 매어 주인의 뒷짐진 손에 쥐여 가고 한 마리는 목도 안 매고 따로 떨어져 있건만 서로 떨.. 수필(신문칼럼) 2010.02.02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찔레 / 문계성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습니다. 세상이, 온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까맣게 탄 목을 간지럽히던 햇살처럼 정답고, 모래사장을 뒹굴며 깔깔거리던 웃음처럼 재미있고, 갈마산 위를 떠돌던 흰 구름처럼 한가롭던 때였습니다. 그때의 하루는, 학교에서는 .. 수필(신문칼럼) 2010.02.02
2004년 전북중앙신문신춘문예 당선작 2004년 전북중앙신문신춘문예 당선작 보(褓) / 박능숙 친정 어머니가 보퉁이로 이고 오시는 봇짐 속에는 잘 익은 알밤과 물 좋은 삼천포 바다가 넘실거린다. 그런 날 저녁 우리 집 주방의 전등불도 덩달아 빛이 환하다. 평소 허리가 결리고 아프다며 그 부위에 찜질이며 파스를 붙이시는 어머니다. 그런.. 수필(신문칼럼) 2010.02.02
2004년 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작 2004년 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이장(移葬) / 정경희 우산 위에 이슬비가 맺힌다. 흘러내리지 못하는 끈적끈적한 마음들. 빗방울들이 내 가슴 속에 남아있는 미움 같다. 주름진 골 사이마다 숨어 있던 증오들이 비가 오면 되살아나 집착처럼 들러붙는 걸까? 우산을 턴다. 일시에 확 뿌리면 들러붙은 미.. 수필(신문칼럼) 2010.02.02
빈들에 서 있는 지게 하나 / 한경선 [전북일보 2001년 신춘문예 당선작품] 빈들에 서 있는 지게 하나 / 한경선 사람 하나 세상에 와서 살다 가는 것이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고, 베어지는 풀꽃과 같다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아침 안개처럼 살다 홀연히 떠나버려도 그로 인해 아파하는 가슴들이 있고, 그리운 기억을 꺼내어보며 쉽게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 질 .. 수필(신문칼럼) 2010.02.02
사색(思索)에 대하여 / 쇼펜하우어 사색(思索)에 대하여 쇼펜하우어 1 수량이 아무리 많더라도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장서(藏書)의 효용도 의문스러우며, 수량은 보잘 것 없어도 정리가 잘 된 장서라면 훌륭한 효과를 거두는 것과 같이 지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많이 끌어모아도 스스로 사색해 낸 지식이 아니면 그 가치는 .. 수필(신문칼럼) 2010.02.02
저녁 구름 / 헤르만 헤세 저녁 구름 / 헤르만 헤세 나는 거실 겸 서재의 동쪽 벽에서는 발코니로 통하는 좁은 문들이 있는데, 그 문들은 5월부터 9월이 꽤 깊을 때까지 열려 있고 그 앞에는 한 걸음 너비에 반 걸음 깊이인 아주 자그마한 석재 발코니가 매달려 있다. 이 발코니는 나의 소유이다. 이 발코니 때문에 나는 몇 년 전 .. 수필(신문칼럼) 2010.02.02
비림(非林) / 윤병무 비림(非林) / 윤병무 책의 종이 날에 손을 베였다. 상처에 침 바르고 책을 펼쳐보니 제본선 골짜기에서 낮은 신음이 들린다. 엄마가 유칼립투스 식림지(植林地)에 일 나가기 전 여름 아지랑이처럼 발열하며 하찮은 생과 싸우고 있었을 한 아이의 마지막 몸의 소리다. 한 권의 책이 된 종이의 날을 가만..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빙어회를 먹지 못하는 저녁 / 박완호 빙어회를 먹지 못하는 저녁 / 박완호 의림지 빙어횟집에 가서 아무 생각없이 소주 몇 잔에 빙어회를 먹다가 어느 순간, 손에 들고 있는 상추쌈 밖으로 불쑥 고개 내민, 순한 눈망울의 살아 있는, 어린 너를 보았네 차마, 빙어회를 먹지 못하는 저녁 석양이 잰 걸음으로 산등성이를 넘다가 잠깐 고개 돌..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북 / 박완호 북 / 박완호 교무실 한 구석 캐비닛 위 몇 해동안 한 번도 울어보지 못한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북채도 없이 홀로 덩그라니 놓여 있는 북, 허공을 쩌렁쩌렁 뒤흔들 커다란 목청을 갖고도 한 번도 땅을 박차고 날아 오르지 못한 새처럼 힘센 소리의 물줄기를 품고도 얼어붙은 폭포처럼 울지 않는 북 가만..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