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火葬을 하다 / 서동인 봄날, 火葬을 하다 / 서동인 보신탕 집에서 얻어 온 똥개 뒷다리를 가스렌지에 올려 두고 깜빡 잠이 들었다 어린 날 폐가 우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검둥이의 비명 소리에 눈을 뜨자 세상에, 방 안 가득 살점 타는 냄새라니, 검게 그을린 냄비 속의 잿더미를 보면서 까맣게 타들어 가는 내 살갗을 꼬집..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압력밥솥 / 장재원 압력밥솥 / 장재원 지금 뜨거운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미사일표 압력솥에 쌀알 같은 이념 한 움큼, 연둣빛 완두콩 서정도 약간, 피와 살이 되는 밥을 짓듯. 눈빛만으로 전언하는 은유의 우윳빛 뜨물 알맞게 붓고, 단단한 혁명 공약으로 박힌 마그마의 심지 불 댕겨 새파란 시혼詩魂 작렬함에 따라 시작..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황금동전이 쌓이는 의자 / 한명희 황금동전이 쌓이는 의자 / 한명희 괴테가 앉았던 이 의자 섹스피어가 앉았던 이 의자를 내어드리지요 카프카가 앉았고 도스토예프스키가 앉았던 이 의자도 내어드리겠습니다 이 의자는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눈 좋은 목수가 동굴에서 해저에서 꿈속에서 나무를 골라냈습니다 오르페우스의 후예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금서禁書 / 오정국 금서禁書 / 오정국 불탄 집의 잿가루에서 꺼내 온 이 문장은 번갯불의 타버린 혀이다 산계곡의 얼음장이 갈라터지는 밤, 저수지 저쪽 기슭에서 뻗쳐오던 힘과 이쪽에서 뻗어가던 힘이 맞부딪힌 자리, 순식간에 얼음 밑바닥까지 칼금처럼 새겨지는 이 문장은 번갯불의 섬광으로 눈먼 자의 주술이다 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플라스틱 트리 / 이성목 플라스틱 트리 / 이성목 나무 엉덩이에 전기 플러그를 꽂아 거실에 세운 문득, 생각났다는 듯 꽃잎 켜지는 걸 보고 있다 창틀이 어긋나 벌어진 틈으로 찬바람 들어 꽃술이 필라멘트처럼 발갛게 얼었다 오늘은 성자가 태어나는 밤 말구유에 아기를 버리고 돌아온 여자의 닫힌 방문은 오랜 시간 안으로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망개나무*의 노래 / 김연성 망개나무*의 노래 / 김연성 저 산등성이 어딘가에 서있는 망개나무여 어긋나고 길쭉길쭉 타원형으로 자란 잎이여 비바람에 뜯겨나간 모진 마음이여 살배나무면 어떻고 멧대싸리라고 부르면 어떠리 내 모든 그리움의 자생지(自生地)는 어디 있을까 번식력은 약하지만 한번 뿌리박으면 잎들의 귀가 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마구, 먹이다 외 1편/ 이보람(이한재) 마구, 먹이다 외 1편/ 이보람(이한재) 소의 아가리를 힘껏 벌리고 폭력이 물을 먹이고 있다 터질듯 배가 부풀어 오른다 도저히 못 먹겠다는 듯 발버둥 쳐도 코뚜레 움켜잡은 손 멈추지 않는다 쏟아져 들어오는 운명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듯 밀도살장에 끌려온 가련하고 순한 눈이 몇 모금 남아 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겨울 과메기 / 이영옥 겨울 과메기 / 이영옥 바람을 무던히도 되받아치며 너는 그렇게 견디고 있었다. 단련된 맷집으로도 견딜 수 없는 것은 추억이 사라지는 일, 마른 아가미 속에 감추어둔 언약 바람 속에 뱉어내고 내장까지 훑어낸 뱃가죽에 행여 한 점 애간장이 묻어있다 해도 이젠 덮어두자 온 몸에 하얗게 소금 꽃 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산수유 외 1편 / 윤석산 산수유 외 1편 / 윤석산 지리산 자락 산수유 뜨거운 폭염의 여름을 지나며 햇살 속 익고 익고 또 익어 가을이 되면 빨간 눈알 같은 열매를 맺는다 가을 햇살 한 뼘이라도 놓칠세라 멍석에 펼쳐 말리고 말려 산수유가 발긋발긋 말 그대로 가을 햇살이 되면 아낙들은 둘러 앉아 산수유를 깐다. 빨간 열매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2008 진주가을문예 당선작 - 아버지의 연필 / 전영관 아버지의 연필 / 전영관 풍구의 회오리가 가슴께를 후려친다 갈탄의 낭자한 선혈 사이로 피 맛을 본 강철이 달아오른다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 강철연필은 학력편차가 크다 몇 자의 비문만 학습한 경우가 있고 공덕문을 줄줄이 암기하는 실력파도 있다 까막눈 돌쟁이는 단지 내장된 .. 신춘문예 당선詩 201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