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미네르바 작품상 아무도 없는 물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 김충규 어두운 낯빛으로 바라보면 물의 빛도 어두워 보였다 물고기들이 연신 지느러미를 흔들어대는 것은 어둠에 물들기를 거부하는 몸짓이 아닐까 아무도 없는 물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에 취하지 않는 물고기들, 그들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몰골은 어떻게 .. 신춘문예 당선詩 2010.02.02
그림자 연극 / 강영은 그림자 연극 / 강영은 그는, 겨드랑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가지고 연극을 상영한다 오른편 그림자를 아내라 하고 왼편 그림자를 애인이라 부른다 그녀들이 서로 만나거나 겹쳐지는 일은 드물다 그가 품고 있던 생각들, 혹은 잠재적인 형상 속에서도 역할 분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른쪽 그녀를 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 위선환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 위선환 등성이로 바람이 불자 나무들이 골짜기로 내려오더니 그늘이 깊어진 산자락에 멎었다. 며칠이 더 지나가고 해가 짧게 저물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창이 있는 방에 불을 켤 것이고 갈 곳이 없는 사람은 나무 뒤에 남아서 바람 지나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밤에는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한겨울 나무마을로 간다 / 최금녀 한겨울 나무마을로 간다 / 최금녀 나무마을로 간다 키가 큰 잣, 리키타, 상수리, 느릅 그 아래 작은 집 한 채씩 짓고 사는 산뽕, 갈메, 산죽, 다릅 이 겨울 나무마을은 하나같이 독한 마음으로 머리 깎고 선방禪房에 들어갔다 눈도 그 동네 눈은 참선을 한다 나무 가지에 앉았다가 슬그머니 땅으로 내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제7회 노작문학수상작 - 물의 결가부좌 / 이문재 물의 결가부좌 / 이문재 거기 연못있느냐 천 개의 달이 빠져도 꿈쩍 않는, 천 개의 달이 빠져 나와도 끄떡 않는 고요하고 깊고 오랜 고임이 거기 아직도 있느냐 오늘도 거기 앉아서 연의 씨앗을 연꽃이게 하고, 밤새 능수버들 늘어지게 하고, 올 여름에도 말간 소년 하나 끌어들일 참이냐 거기 오늘도 .. 신춘문예 당선詩 2010.02.02
눌러앉다 / 손현숙 눌러앉다 / 손현숙 이사를 결정한 후 그의 고민은 산수유 한 그루였다 30년 수유리를 몸에 담아 가지와 줄기를 말없이 키웠을, 말하자면 여기서 시 쓰고 새끼 키우고 세상과 맞서면서 그는 늙고 나무도 조용히 나이테를 늘렸으리라 올 봄 유난히 빨리 벙근 꽃망울 함께 떠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몸소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배꽃 / 안도현 배꽃 / 안도현 배꽃 속에 흑염소들이 몇 마리 살고 있다 뿔은 서로 떠받을 일이 없어 말랑말랑하고 엉덩이는 누구를 향해 실룩거려 보지 않아 볼그족족하다 가족끼리 영 재미없는 고스톱을 치는 것도 같고 배꽃천주교회에서 예배를 보며 묵상중인 것도 같다 그런데 올봄에 꽃잎 속의 흑염소들이 싸우..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2.02
석류 / 배우식 석류 / 배우식 할머니 웃으신다 하하하 할머니 한번 터뜨린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할머니 자꾸자꾸 웃으신다 하하하 할머니 주름진 입술 오므리고 하하하 웃음을 흘리신다 하늘은 캄캄한데 입 터진 할머니, 기막히면 웃음이 줄줄 흐르는 할머니, 눈멀어 캄캄한 내 눈 속에, 울음을 한 소쿠리 떨어뜨리신..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가을 식사 / 최금녀 가을 식사 / 최금녀 가을배추를 심었다 순한 배추국을 목으로 넘길 때마다 가까운 이름들이 생각나서 된장 푼 배추국을 한 솥단지 끓여놓고 부를 사람 몇 머릿속에 그리며 눈뜨기가 무섭게 마당으로 나간다 밤새 더 넓어진 구멍들 새로 생긴 바늘 끝 만한 구멍들 벌써 달팽이는 잔디밭으로 몸을 숨기고..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
파꽃이 피는 이유 / 권정일 파꽃이 피는 이유 / 권정일 고백해 봐요, 왜 꽃을 피우는지. 강을 사이에 두고 파와 가로등은 마주 봐요 파는 강 저편에서 쏘아대는 불빛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언제부턴가 가로등을 연모하기 시작 했어요 문명과 반문명은 내외(內外)해야 하거든요 파, 파하! 파하! 파하! 피어나는 웃음들. 저녁,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