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 김영미 두부 / 김영미 1 그러니까 상고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총인구수를 알고 싶다면 두부를 먹어본 사람 수를 헤아리면 되리라 2 여기 두부가 있다 무색무취에다 자의식이 없는 두부는 돼지비계와 붙고 김치에 붙고 쓸개와도 어울린다 어떤 맛도 주장하지 않는 두부는 모든 맛과 거리를 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1
'셀비'라는 이름의 얼룩 / 유미애 '셀비'라는 이름의 얼룩 / 유미애 당신을 불러들인 건 등의 얼룩입니다 멍 자국이 자라 곰곰 깊어진 내 얼룩 속으로 당신이 하르르 쏟아진 탓입니다 당신을 안은 건 자루 같은 얼룩의 입술, 소소한 탄성, 당신을 깨물 었던 얼룩이 종소리처럼 파열됐을 때 할머니와 그의 할머니들이 돌무덤을 나와 돛배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1
남항(南港) / 고성만 남항(南港) / 고성만 날마다 밀항을 꿈꾸는 소년들이 아열대 나무처럼 자라는 남쪽 항구 돌 속에 고인 눈물은 어떤 맛이고 앞뒤 꼽추는 어떻게 관계하는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는데 어느 사리 때 어머니께서 따오신 석화를 열고나서야 눈물이 간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꼽추가 자식을 여럿 두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1
물탱크의 울음 / 양해기 물탱크의 울음 / 양해기 밤새 물탱크가 우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있다네 그르렁 그르렁 벼르는 어떤 사나운 짐승 소리를 내며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물탱크 몸 뒤척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네 탁한 물과 욕망으로 가득 채워진 나도 하나의 노란 플라스틱 물탱크에 지나지 않았다고 나를 대신해 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1
꽃게 이야기 / 김선태 꽃게 이야기 / 김선태 흔히 보름 게는 개도 안 먹는다는 속설이 있지요. 왜냐구요? 이놈 들은 주로 보름 물때에 탈피를 하느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기 때문이 지요. 하여, 겉은 번지르르 해도 속은 텅 비어 있으니 그야말로 무장 공자無腸公子라는 말씀이지요. 허나, 서해 어느 갯마을에는 이 속설을 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1
사재기 전모 / 손세실리아 사재기 전모 / 손세실리아 한동네 사는 글쟁이 몇이 밥 먹기로 약속한 날 하필이면 대형서점의 일부 베스트셀러 순위가 대형 출판사의 사재기로 조작됐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터졌다 저마다 분통터져하는데 우리 중 막내이면서 스테디셀러 시집으로 자리매김한 ㅅ만 별말 없다 한참만에야 비장하..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1
패밀리 / 정일근 패밀리 / 정일근 조심해! 자연에도 패밀리가 있다. 이딸리아 마피아나 러시아 마피아와 같은 패밀리가 있다. 자연의 패밀리란 사람의 족보로 치자면 같은 항렬자를 쓰는 형제나 사촌쯤 되는, 그러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의 족보와는 다른, 자연의 인드라망이 있다. 동물의 왕인 호랑이와 밀림의 왕인 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1
퉁* / 송수권 퉁* / 송수권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괴** 꼬막 보듯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손톱이 없으면 밥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1
한 벌의 양복 / 손순미 한 벌의 양복 / 손순미 한 벌의 그가 지나간다 그는 늘 지나가는 사람 늘 죄송한 그가 늘 최소한의 그가 목이 없는 한 벌의 양복이 허공에 꼬치 꿰인 듯 케이블카처럼 정확한 구간을 지키듯 신호등을 지나 빵집을 지나 장미연립을 지나 가끔 양복 속의 목을 꺼내 카악- 가래를 뱉기도 하며 한 벌의 양복..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1
검은 밤의 백합화 / 손순미 검은 밤의 백합화 / 손순미 공중변소 다녀오는 밤길에 그것은 피어 있었다 나팔 같은 주둥이, 아니 가랑이 그것은 지루한 여름밤을 나팔분다 나는 변소의 추억을 지우려 그것을 끌어당겼다 별이 지고, 비가 올 것인가 내가 누고 온 그것처럼 그것의 가랑이는 숨 막히다 애인에게 버려진 지 오래인 여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