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꽃 / 신순애 (시조시인) 파꽃 / 신순애 (시조시인) 민들레 씨를 따라 허공을 난자한들 흙 속의 질긴 인연 차마 뜰 수 없는가 핏줄만 까망 낟알로 방울방울 맺혔네 쭉 곧은 잎새마다 바람으로 채운 동굴 칼끝에 묻어나는 매몰찬 독소 풀어 아! 정녕 너는 바보스런 지휘봉의 그리메 너 죽어 내가 사는 인과의 무대 위에 새하얀 독.. 좋은 시조 2010.01.24
어떤 순교, 후 / 송 희 어떤 순교, 후 / 송 희 동백꽃 한 송이를 덥썩, 보쌈했습니다 하얀 비닐봉지 속에서 잎이 더 파르르 하더니 잠깐 숨이 멎었습니다 시집갈 때 철없이 주워 입은 내 옷 붉은 저고리에 초록 치마만 같아서 손부터 가고 말았습니다 헌데 딱 하루 만에 툭, 제 모가지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시집 간 날 한 번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24
[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낯선 아내 / 이유 잠복근무 중 잠깐 집에 들렀다 현관 앞에서 낯선 여자를 봤다. 죄송하다는 말을 웅얼거리며 나는 황급히 문밖으로 나섰다. “뭐야, 오자마자 또 나가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였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채 나는 여자를 돌아봤다. 분명 모르는 여.. 중단편 소설 2010.01.24
[창간44주년 중앙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창간44주년 중앙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내가 스타벅스에서 나온 것도 다 이 물 때문이었다 스미스 / 김지숙 일러스트=김영윤 길을 잃은 것 같았다. 한 블록 정도 온 길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그 길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만고만한 옷가게와 식당과 커피숍이 줄지어 있었다. 길치인 나에.. 중단편 소설 2010.01.24
[2010 경향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2010 경향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개가 돌아오는 저녁 / 연규상 송찬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의 변용 1. 순식간이었지만 분명 꿩이었다. 황색선을 세차게 출발한 그것은 길을 가로질러 전력 질주했다. 거추장스러운 외투를 뒤로 훔쳐 올리듯 날개를 잔뜩 웅크린 놈은 몸을 낮추고 목을.. 중단편 소설 2010.01.24
당신의 자장가 / 김은아 [2010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당선작 [2010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당선작] 당신의 자장가 / 김은아 어둡다. 팔을 가슴에 엑스자로 모으고 반대편 팔뚝을 쓰다듬는다. 천장에 등이 달려 있지만 초여름의 햇살에 익숙했던 눈은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여자는 깊은 우물 같은 암흑에 눈을 감는다. 여자의 몸 전체가 사라진다. 균형감마저 잃어.. 중단편 소설 2010.01.24
계란 프라이 / 마경덕 계란 프라이 / 마경덕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면 병아리고 누군가 껍질을 깨주면 프라이야, 남자의 말에 나는 삐약삐약 웃었다. 나는 철딱서니 없는 병아리였다. 그 햇병아리를 녀석이 걷어찼다. 그때 걷어차인 자리가 아파 가끔 잠을 설친다. 자다 깨어 날계란으로 멍든 자리를 문지른다. 분명 녀석의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24
봄에는 짐승처럼 예민해져야 한다 / 김정란 봄에는 짐승처럼 예민해져야 한다. 봄은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김정란(시인, 원주 상지대 인문과학부 교수, 문학평론가) 젊었을 때는 가을을 좋아했었다. 그것도 늦가을을.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내 마음 안에서는 활발하게 詩情이 솟아오르기 시작.. 수필(신문칼럼) 2010.01.24
잘 늙은 절, 화암사(花巖寺) / 안도현 (시인) 잘 늙은 절, 화암사(花巖寺) / 안도현 (시인)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절 치고 사실 잘 늙지 않은 절이 없으니 무슨 수로 절을 형용하겠는가. 심지어 잘 늙지 않으면 절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심사도 무의식 한쪽에 풍경처럼 매달려 있는 .. 수필(신문칼럼) 2010.01.24
수영동 푸조나무 / 손택수 [풍경이 있는 에세이] 수영동 푸조나무 / 손택수 (시인) 500여년 "聖樹" 숱한 곡절 품고 인간 위무 나무는 성자(聖子)다. 나는 나무를 보면 성 프란체스코나 성 테레사 수녀님처럼 그를 성인품에 올려주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어 자주 안달이 난다. 사실 나무만큼 오랫동안 조용히 피 흘리며 숨져간 순.. 수필(신문칼럼) 2010.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