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순 『놀빛 고(考)』 한분순 『놀빛 고(考)』 골짜기에 핀대서 다 꽃이 아니듯이 제 빛 늘 지녔지만 그냥 산색(山色) 아니듯이 그림자 길게 끄신대서 꼭 밤은 아니다. 질 고운 비단 고르듯 풀섶 지나온 바람, 길목을 지키고 앉아 적요를 즐기노니 활활활 타오른다고 해서 그게 불꽃만은 아니다. < 한분순 시인 > 70년 서울..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10.07.05
박주택 『강남역』 박주택 『강남역』 그리하여 시간이란 계급을 재편성하는 과정이란 느낌이 들 때 햄버거는 입 속에서 혈관을 터트리고 커피는 저녁처럼 어두워졌다. 순환하는 인간들, 청춘은 중년이 되고 또 다른 청춘은 이곳을 가득 메우며 노년에 이르게 됨을 눈치 채지 못한다. 이십 년 전에도 그랬다, 포장마차가..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10.07.05
김경식 『논둑길 걸으며』 김경식 『논둑길 걸으며』 고래실논 가로질러 논둑길 걸어 보라 늙은 농부들 한평생에 빚만 낟가리로 쌓여 어거리풍년에도 한숨만 나온다. 그러나 맑은 가난이 그리우면 논둑길을 걸어 보라 논이 언제 거짓말 하던가. 천둥지기 아들들 출세하여 지주 아들의 밥줄을 움켜잡은 자본주의를 희년의 나팔..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10.07.05
김종해 『바람 부는 날』 김종해 『바람 부는 날』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10.07.05
오세영 『라일락 그늘에 앉아』 오세영 『라일락 그늘에 앉아』 맑은 날, 네 편지를 들면 아프도록 눈이 부시고 흐린 날, 네 편지를 들면 서럽도록 눈이 어둡다. 아무래도 보이질 않는구나. 네가 보낸 편지의 마지막 한 줄, 무슨 말을 썼을까. 오늘은 햇빛이 푸르른 날, 라일락 그늘에 앉아 네 편지를 읽는다. 흐린 시야엔 바람이 불고 ..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10.07.05
허영자 『한강』 허영자 『한강』 세상에는 수많은 강이 있지만 내 나라 은성한 도읍의 맑은 하늘을 싣고 흐르는 강은 한강뿐이리 세상에는 수많은 강이 있지만 북악과 삼각산 푸른 그리매 그 굽힘 없는 기상을 담아 흐르는 강은 한강뿐이리 귀 기울이면 흰 옷 입은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 또 귀 기울이면 먼 내일..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10.07.05
황지우 『뼈아픈 후회』 황지우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있는 갈퀴나무,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10.07.05
지울 수 없는 얼굴 / 고정희 지울 수 없는 얼굴 / 고정희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10.06.09
인디언 아파치족의 결혼 축시 인디언 아파치족의 결혼 축시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 ..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10.06.09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 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 ♣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2010.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