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 안도현 배꽃 / 안도현 배꽃 속에 흑염소들이 몇 마리 살고 있다 뿔은 서로 떠받을 일이 없어 말랑말랑하고 엉덩이는 누구를 향해 실룩거려 보지 않아 볼그족족하다 가족끼리 영 재미없는 고스톱을 치는 것도 같고 배꽃천주교회에서 예배를 보며 묵상중인 것도 같다 그런데 올봄에 꽃잎 속의 흑염소들이 싸우..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2.02
쨍한 사랑노래 / 황동규 쨍한 사랑노래 - 황 동 규 -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27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윤 동 주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27
어떤 순교, 후 / 송 희 어떤 순교, 후 / 송 희 동백꽃 한 송이를 덥썩, 보쌈했습니다 하얀 비닐봉지 속에서 잎이 더 파르르 하더니 잠깐 숨이 멎었습니다 시집갈 때 철없이 주워 입은 내 옷 붉은 저고리에 초록 치마만 같아서 손부터 가고 말았습니다 헌데 딱 하루 만에 툭, 제 모가지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시집 간 날 한 번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24
계란 프라이 / 마경덕 계란 프라이 / 마경덕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면 병아리고 누군가 껍질을 깨주면 프라이야, 남자의 말에 나는 삐약삐약 웃었다. 나는 철딱서니 없는 병아리였다. 그 햇병아리를 녀석이 걷어찼다. 그때 걷어차인 자리가 아파 가끔 잠을 설친다. 자다 깨어 날계란으로 멍든 자리를 문지른다. 분명 녀석의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24
나비 시인 / 문정희 나비 시인 문정희 도산공원 앞에 차를 세워 놓고 당신을 기다리는 사이 불현듯 흰나비 한 마리 차안으로 들어왔다 스스로 신화를 쓰는 존재? 허공에다 알을 낳으려는 시인처럼 그는 어린 날개로 허공을 밀며 혼신을 다해 무언가를 표현하려 했다 언어의 탑을 쌓았다가 가벼이 무너뜨릴 줄도 알았다 신..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 문정희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문정희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숨죽여 홀로 운 것도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지도 몰라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당신을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몰..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꽃의 선언 / 문정희 꽃의 선언 문정희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의 성(性)을 사용할 것이며 국가에서 관리하거나 조상이 간섭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사상이 함부로 손을 넣지 못하게 할 것이며 누구를 계몽하거나 선전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정녕 아름답거나 착한 척도 하지 않을 것이며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폭설도시 / 문정희 폭설도시 문정희 폭설이 도시를 점령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첫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되었다 반짝이는 시간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발밑에서 새의 깃털 소리가 났다 하얀 손을 가진 이 통치자는 누구인가 그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내건 적도 없지만 역사상 어떤 만장일치로 세운 정부보다 빠르..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
나의 아내 / 문정희 나의 아내 문정희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 환한 웃음으로 피어난 꽃 같은 아내 꼭 껴안고 자고 나면 나의 씨를 제 몸 속에 키워 자식을 낳아주는 아내 내가 돈을 벌어다 주면 밥을 지어주고 밖에서 일할 때나 술을 마실 때 내 방을 치워놓고 기다리는 아내 또 시를 쓸 때나 소파에서 신문..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