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를 삶는 / 윤관영 국수를 삶는 / 윤관영 국수를 삶는 밤이다 일어나는 거품을 주저앉히며 창밖을 본다 滿開한 벚나무 아래 평상에서 소리가 들린다 웃음소리가 들린다 젓다가 찬물에 헹군다 누가 아들과 아내 떼어놓고 살라 안 했는데 이러고 있듯 벚꽃은 피었다 기러기아빠라는 말에는 국수처럼 느린 슬픔이 있다 비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
지하 셋방 앞 목련나무 / 서수찬 지하 셋방 앞 목련나무 / 서수찬 문을 열고 나오다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목련꽃이 너무나 깊게 나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이삿짐을 나르다가 장롱이 안 들어가서 목련나무 몇 가지를 자른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때 일 때문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금방 내 옹졸한 속을 알아차립니다 벌써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26
장날 / 김창균 장날 / 김창균 파장 무렵 장에 간다 이 골목의 끝에는 어물전이 있어 좋고 저 골목의 끝에는 국밥집이 있어 좋다 어느 날은 뜨거운 수건을 얼굴에 덮고 누워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는 날도 있다. 늙은 애비가 또 저와 같이 늙어가는 아들과 마주앉아 낮술을 마시는 국숫집에 들어 국수를 먹기도 한다 국..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26
밥상 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 백상웅 밥상 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 백상웅 우리 가족의 밥상은 반찬이 적을 때도 첩첩산중. 낫을 휘두르고 괭이질을 해야 건널 수 있었지. 밥상의 가운데는 모닥불을 피워 냄비를 걸었던 흔적. 우리가 둘러앉아 가죽을 벗기고 뼈를 골라내던, 짐승 울음소리를 듣고 벌벌 떨며 오줌을 지리던 자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26
와온 속으로 / 하여진 와온 속으로 / 하여진 하루도 거르지 않는 축제 루체비스타는 역겨워, 금요일 담배를 끄고 차를 돌렸어 시간의 사원 톨게이트 건너온 갯내 묻은 바람 순천만 가까워질수록 볼륨을 높이고 속도를 올렸어 30미터 전방에 과속방치턱 감속하세요 헤드라이트에 살아나는 해안도로 지날 때마다 헤어진 그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26
소반다듬이 / 송수권 소반다듬이 / 송수권 왜 이리 좋으냐 소반다듬이, 우리 탯말 개다리 모자 하나를 덧씌우니 개다리소반상이라는 눈물 나는 말 쥐눈콩을 널어놓고 썩은 콩 무른 콩을 골라내던 어머니 손 그 쥐눈콩 콩나물국이 되면 술이 깬 아침은 어, 참 시원타는 말 아리고 쓰린 가슴 속창까지 뒤집어 흔드는 말 시인..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26
인도양 / 최준 인도양 / 최준 젖은 모래톱 걸어간 물새 발자국 그 깊이만큼 가벼웠을 영혼의 흔적 따라 걸어가다 보면 새가 날아가는 것 날아갈 수 있게 하는 것 날개만이 아닌 것 같다 아니, 날개가 아닌 것 같다 껍질 깨고 나온 부화의 순간부터 어느 한 곳에도 붙박아 두지 않은 마음 더불어 흔들려야 하는 가지에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26
우포늪 통신 / 강경보 우포늪 통신 / 강경보 저 왕버들 뿌리를 만져본 적 있니? 일억 년도 넘은 우포늪이 말을 다 한다는데 말이 샘물처럼 고여서 이제는 아예 제 몸이 말이라고 그냥 그런 줄 알라고 그때부터 마음의 생각들 어린 물풀로 올린다는데 왕버들 뿌리 끝에는 이동통신기지국이 있어서 어젯밤부터 물젖은 전파를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26
꽃삽 / 나혜경 꽃삽 / 나혜경 꽃삽 한 자루 사다 놓고 일 년에 딱 한 번 땅두릅 캐러 갈 때 써먹는데 분갈이를 하거나 꽃모종을 뜨자던 소박한 소망 하나 이루지 못하고 두릅의 어린 순이나 상하게 하자니 막사는 생 꽃삽이라 부르지를 말아라 이름답게 살고 싶어 몸부림치다 올 봄 제 손으로 제 허리를 분질러 놓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26
나무에게 묻다 / 천서봉 나무에게 묻다 / 천서봉 나는 나의 아무것도 나무와 바꿀 생각이 없으나 그가 꿈꾸는 것들을 물어 본 적도 없다 스님들은 일찍부터 禪房에 들었단다 지나가던 보살에게 위치를 묻자 낮지 않은 돌담, 속세를 막아서는데 천천히 고개 돌려보니 담장 위로 낯을 내민 대숲이 오히려 나를 보고 있다 앉았던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