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배후 / 최광임 눈물의 배후 / 최광임 한 계절에 닿고자 하는 새는 몸피를 줄인다 허공의 심장을 관통하여 가기 위함이다 그때 베란다의 늦은 칸나 꽃송이 쇠북처럼 매달려 있기도 하는데 그대여 울음의 눈동자를 토끼눈으로 여기지는 마시라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는 고목일수록 어린잎들 틔워내는 혼신의 힘..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14
마흔을 기다렸다 / 함순례 마흔을 기다렸다 / 함순례 산허리에 구름이 몰려 있다 알 수 없지만 내가 가고 있으니 구름이 오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빗속에서 바라보는 구름은 고등어처럼 푸릇했으나 파닥거리지는 않는다 추녀에 매달려 울던 빗방울들이 호흡을 가다듬는 저녁 다섯 시 점점 켜지는 불빛들 바라보며 묘하게 마음 편..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14
예스터데이 / 한혜영 예스터데이 / 한혜영 휘청휘청 돌아가는 연못 낡은 턴테이블 앞에 쭈그려 앉습니다 예스터데이∼ 흐느끼는 물풀 위로 한 떼의 시간이 꼬리를 끌며 지나갑니다 촌스런 전나무도 이런 팝송 하나쯤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갤 끄덕거리고 오렌지는 아까보다 조금 더 붉어지는데 난데없이 튀어 오르는 판! 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14
물이 자라는 이유 / 정용화 물이 자라는 이유 / 정용화 난간 위 물방울이 아슬아슬하다 겨울을 거울로만 읽지 않았어도 꽃은 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먼 나라 소식을 전하듯 가물가물 하나의 반짝임으로 빛나는 물방울을 보지 않았어도 봄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거울 속에서 부서지고 깨어지는 것으로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14
고두밥 진밥 외 1편 / 김진기 고두밥 진밥 외 1편 / 김진기 밥을 먹다가 문득 내가 진밥을 닮아 간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적 어머니는 아버지의 입맛에 따라 진밥을 지었다 씹힐 때 고소하게 우러나오는 고두밥의 맛과는 달리 숟가락에 질척질척 매달리며 목구멍을 은근슬쩍 넘어가는 진밥이 나는 싫었다 숟가락으로 푹푹, 진밥에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14
십일월 / 정수경 십일월 / 정수경 법률사무소 앞 벤치에 십일월 햇살이 주춤거린다 파산선고 받은 은행잎들 벚나무 둥치 돌아 골목 뒤지는 바람에 스산하게 밟히고 저녁이 지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빌딩 그림자 깊숙이 눌러쓰고 벤치를 지고 있는 사내 세상으로 나가는 모든 페이지가 봉인되었다 주저앉을 듯 구겨..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14
양철지붕 집 / 장정자 양철지붕 집 / 장정자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소리의 탑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데 지붕위로 흐르는 계절도 낚아채 탑 속에 차곡 재워놓고 참새소리 까치소리 탱자 꽃 터지는 소리도 녹음해놓고 소나기 소리에 콩 볶아먹고 나뭇잎 떨어지면 지짐 부쳐 먹고 바람 스산한 날엔 귀신놀이, 눈 오는 날은 시뻘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14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김선우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김선우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풀여치 있어 풀여치와 놀았습니다 분홍빛 몽돌 어여뻐 몽돌과 놀았습니다 보랏빛 자디잔 꽃마리 어여뻐 사랑한다 말했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흰 사슴 마시고 숨결 흘려놓은 샘물 마셨습니다 샘물 달고 달아 낮별 뜨며 놀았습..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8
별 / 박완호 별 / 박완호 목수였던 아버지는 죽어서 밤하늘 가득 반짝이는 순금의 못을 박아놓았네 텅, 빈, 내 마음에 화살처럼 와 꽂히는 저 무수한 상흔들 시집 <내안의 흔들림> 시와시학사. 2003 65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 박영근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 박영근 낡은 흑백 필름 속 같은 곳에서 쓸쓸히 늙어가는 내가 보인다 한편의 詩를 쓰려면 몇밤을 불면으로 때우는 나를 바겐세일도 하지 못해 백화점 문턱도 넘지 못하는 나의 상품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베스띠 벨리 막 화장을 끝낸 마네킹의 얼굴도 보인다 TV 뉴스 속..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