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으로 읽다 / 조은 발바닥으로 읽다 / 조은 찌든 이불을 빤다 무거운 이불 한 채, 물에 불린다 모란 잎, 때 절은 이파리 고무통에 담그니 발바닥에 풋물이 든다 모란꽃이 쿨럭쿨럭 거품을 토해낸다 고무통 수북이 거품이 솟는다 맥을 짚듯 두 발로 더듬는다 삶에 찌든 내가 밟힌다 먼 기억 속 부드러운 섬모의 숲을 거슬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
우포늪 통신 / 강경보 우포늪 통신 / 강경보 저 왕버들 뿌리를 만져본 적 있니? 일억 년도 넘은 우포늪이 말을 다 한다는데 말이 샘물처럼 고여서 이제는 아예 제 몸이 말이라고 그냥 그런 줄 알라고 그때부터 마음의 생각들 어린 물풀로 올린다는데 왕버들 뿌리 끝에는 이동통신기지국이 있어서 어젯밤부터 물젖은 전파를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
꽃삽 / 나혜경 꽃삽 / 나혜경 꽃삽 한 자루 사다 놓고 일 년에 딱 한 번 땅두릅 캐러 갈 때 써먹는데 분갈이를 하거나 꽃모종을 뜨자던 소박한 소망 하나 이루지 못하고 두릅의 어린 순이나 상하게 하자니 막사는 생 꽃삽이라 부르지를 말아라 이름답게 살고 싶어 몸부림치다 올 봄 제 손으로 제 허리를 분질러 놓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
거미 법당 / 김부동 거미 법당 / 김부동 땅거미지자 과부거미 한 마리 실젖을 뽑아 밤을 옭맨다 몇 땀씩 얽힌 밤이 숨죽자 거뭇발 어둠의 신경줄은 가들가들 가시털을 밀고 나온 어둠의 촉각에 배티는 공중 법당 사마귀 한 마리 걸려든다 날리는 표창에 독이 발린 사마귀 친친 감긴 거미줄이 고무줄이어라 쏠고 남은 이바..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
콩나물 외 2편 / 김부동 콩나물 외 2편 / 김부동 빛도 흙도 드문 볏짚 위에 손도 발도 없는 쥐눈이콩알이 순애를 틔웁니다 애마른 지실물로서는 마셔 마셔도 목마른 남새임에 바뿌재 캄캄 시루 속에 노오란 온음표들이 빼곡 차올라옵니다 한뼘 못 되는 연둣빛이 웃자랐다고 한 모춤 뽑아낼 쯔슴 그예 합장 풉니다 앳된 그리움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
터널 관리인 / 백상웅 터널 관리인 / 백상웅 그들이 꿈틀대는 터널의 양 끝을 묶어버렸겠지. 나는 열차를 타고 터널 속을 속절없이 오고가는 사람. 나는 궁금했지. 터널 양 끝 위치한 집에서 살아가는, 관리인이라고 불리는 종족 말이야. 입구와 출구를 구별할 수 있긴 있는 거야? 뚫린 구멍 속에서 앞뒤 구멍을 찾는 것이 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
아홉 구름의 꽃에 관한 작법作法 외 4편 / 강경보 아홉 구름의 꽃에 관한 작법作法 외 4편 / 강경보 나의 버드나무 노래를 듣고 사랑을 청한 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귀를 통하고 입술을 통한 말, 동침을 하기도 전에 떠나가 버린 꽃 아름다웠는데, 그 아름다움에 견줄만한 다른 아름다운 꽃이 찾아 온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 시를 짓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
생각의 뒤편 외 1편 / 장재원 생각의 뒤편 외 1편 / 장재원 왼손 가운뎃손가락 끝마디 안쪽에 밤송이 가시가 부러진 채 박혔다 뽑아 낼 수 없어서 친구 삼았다 자주 모르고 물건을 집을 때마다 따끔거려 불편했지만 그때마다 성가신 불청객이 쑤셔대는 생각을 볼 수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적과의 동침이 주효했던가 과연 며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
바람세탁소 / 최정진 바람세탁소 / 최정진 수면의 바람이 강변의 벚나무에게 옮겨간다 나무에 장이 서는지, 잎들이 소란스럽다 새벽의 퉁퉁 부은 눈꺼풀 속에 지난밤의 꿈을 담아왔다 천막을 팽팽하게 끌어당기면 물건을 팔거나 사러 온 사람들은 장에 가기 전에 읍내 하나뿐인 세탁소부터 들렀다 두고 간 옷가지에 묻어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
꿀통 / 윤관영 꿀통 / 윤관영 배추 잎이 오그라들면서 끝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꿀통이라 한다 그러니까, 제가 저를 파먹는 놈이다 이 꿀통에는 꼴통의 냄새가 난다 집요한 나르시스의 냄새가 난다 칼로 허리를 치면 제 살 파먹은 흔적이 나이테 같다 뿌리부터 썩는 꿀통은 자살 광신도 같다 건드리면 부서져 내린다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