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다른 이름/서연정 미로의 다른 이름/서연정 우아하게 얽힌 덩굴 향그런 살냄새란 미로랑 딸 미로랑 그 자손의 거주지다 뒤섞인 사람냄새로 길은 본래 시금털털하다 대낮의 숲속에서 일상은 정박이다 바닥에 주저앉아 차오른 숨 고른다 끌고 온 삶의 꼬리를 잘라버린 도마뱀 수많은 길을 삼켜 통통히 살이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이 몸이 배가 되어―이항복 이 몸이 배가 되어―이항복 나는 항상 소망하지 곡식 만 섬을 싣는 배가 되었으면, 배 안 넓은 곳에 다락을 세웠으면 하고 동으로 남으로 가는 나그네를 때가 되면 모두 건네주고 해 질 녘에는 무심히 두둥실 노닐었으면 하고. ―이항복(李恒福·1556~1618) 與守初(여수초) *호가 수초인 친구..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파도는/오세영 파도는/오세영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스러짐이 좋은 것이다. 아무 미련 없이 산산히 무너져 제자리로 돌아가는 최후가 좋은 것이다.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흰 포말로 돌아감이 좋은 것이다. 그를 위해 소중히 지켜온 자신의 지닌 모든 것들을 후회 없이 갖다 바치는 그..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예방주사/엄기원 예방주사/엄기원 약 냄새가 코를 톡 쏜다. 낯선 아저씨가 주사기를 들고, 낯선 누나가 약솜을 들고 다가서면, 주사침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 서로 빠져 뒤에 가 선다. ―엄기원(1937~ ) 이 동시를 읽으면서 '그래, 그때 그랬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금은 그 친구들 어떻게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저녁에 집들은―헤르만 헤세 저녁에 집들은―헤르만 헤세 저물녘의 기운 황금빛 속에 집의 무리는 조용히 달아오른다, 진기하고 짙은 빛깔로 그 휴식은 기도처럼 한창이다. 한 집이 다른 집에 가까이 기대어, 집들은 경사지에서 의형제를 맺고 자란다,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노래처럼 소박한 그리움으로. 벽, 석..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오동꽃/유재영 오동꽃/유재영 언제였나 간이역 앞 삐걱대는 목조 이층 찻잔에 잠긴 침묵 들었다 다시 놓고 조용히 바라본 창밖 속절없이 흔들리던 멀리서 바라보면 는개 속 등불 같은 청음도 탁음도 아닌 수더분한 목소리로 해질녘 삭은 바람결 불러 앉힌 보랏빛 누구 삶이 저리 모가 나지 않았던가 자..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잎, 잎/신대철 잎, 잎/신대철 낮은 山도 깊어진다. 비안개에 젖어 무수히 피어나는 속잎, 연하디연한 저 빛깔 사이에 섞이려면 인간의 말의 인간을 버리고 지난겨울 인간의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했을까? 핏줄에 붙은 살이 더러워 보인다, 잎과 잎 사이 벌거벗고 덜렁거릴 것 덜렁거리며 서 있을수..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황혼/이광덕 황혼 뒤에 작은 달은 떨어지고 푸득푸득 새는 날아 산 빛 속에 숨어든다. 대청 앞의 늙은 파수꾼은 휘늘어진 나무 성곽 넘어 고매한 어른은 우뚝 높은 산 경박한 세상이라 뼈만 앙상한 몸을 멀리하고 흐르는 세월은 젊은 얼굴을 앗아간다. 나는 너와 은총과 원한을 다투지 않건만 무슨 일..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밤비/문삼석 밤비 외롭잖니? 밤비야 혼자서만 내리는 밤비야 무섭잖니? 밤비야 어둠 속을 다니는 밤비야 ―문삼석(1941~ )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본 감동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잃어버린 신발 때문에 생긴 아이들의 이야기에 웃다 울다가 그예 눈이 빨개져서 극장을 나선 기억이 지금도 새롭..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산들 바람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최동호 산들 바람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최동호 첫 새벽 시작한 학과 공부에 등뼈 비틀던 경판들도 학승들과 제 자리로 돌아간 다음 노스님네 게걸음 산보 어간에 대웅전 코끝을 까치가 간질러 튀밥처럼 희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 마당 귀퉁이에 폭포처럼 내려와 나무이파리 흔드는 산들..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